고향에는 지금쯤(21)

통신과 문과장은 백창도 과장에게 담배를 권하면서 귀를 빌렸다.

 『보위부에서 무슨 소식 없습네까?』

 담배에 불을 붙여 길게 연기를 내뿜던 백창도 과장이 삐닥하게 고개를 돌린 채

 『뭔 소식?』하면서 문과장을 바라봤다.

 『어제 보위부 통신과 지도원이 귀띰해 주었어 어렴풋이 알고 있는데, 요즘 중국 딸보꾼들(중국 거주 조선족 보따리 상인)이 우리 낙원군에 일제 라체오락필림(섹스필림)을 대량 유포시켰다고 해요. 그래서 이번 모내기전투 끝나면 사회안전부와 합동으로 가가호호 대량검열사업을 벌인답디다. 대체 기따우 부화질필림을 누가 볼까요?』

 『뻔하디. 비디오 가지고 있는 당기관 간부들이나 기업소 지배인 놈들이 보지, 무지렁이 로동자 롱민들이 그런 거 보갔어?』

 『청년돌격대원들은 남조선 젊은 가수들 노래를 그렇게 많이 부른다면서요.?』

 『기건 지금 심각할 정도야.』

 『감찰과에서는 무슨 대책이 없습네까?』

 『없어. 인력도 한정돼 있구 구류장과 교화소도 만원이야.』

 『우리 공화국이 이런 식으루 사회적 순수성을 잃어가면 나중에는 어케 되갔습네까?』

 『모르지. 수정주의루 나가는 때놈들 때문에 우리두 이젠 사면초가야. 인민들의 가슴엔 패배주의가 가득 차 있구.』

 백창도 과장은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이라도 몇 푼씩 거둬야 우리도 경리과 아이들처럼 준비라도 좀 하지. 난 지금도 이해가 안돼. 모내기전투 나가는 사회안전원들이 간장·된장·고추장까지 준비해서 농촌에 들어가는 게.』

 『농촌도 이제 메말랐다는 증거지요. 조심해서 가시라요.』

 문과장은 문 밖에까지 따라나와 감찰과장을 배웅했다. 감찰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1층으로 내려왔다. 그때 대위 견장을 단 보위부원 한 사람이 백과장 앞으로 다가왔다.

 『곽병룡 상좌는 몇 층에 있습네까?』

 백과장은 말을 묻는 대위가 안전부장 동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재빨리 아래 위를 훑어봤다. 보위부에 근무하고 있다는 부장 동지의 동생 같았다. 백과장은 대위가 자기보다 15년은 젊어 보였지만 깎듯이 경칭을 쓰며 안내했다.

 『제가 모셔다 드리갔습네다.』

 백과장은 3층으로 올라와 ㄴ타자수를 불러냈다.

 『부장 동지께 손님 오셨다고 말씀 드리라우.』

 백과장은 타자수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목례를 했다.

 『그럼, 이만.』

 백과장이 이만큼 물러나는데 곽병룡 상좌가 복도로 나오며 돌연 놀란 빛을 보였다.

 『여기, 웬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