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지금쯤(26)

 『기래, 영호라고 불렀지. 눈도 부리부리하고 허우대도 멀쑥하게 잘 생겼지.』

 송 아바이가 사관장의 얼굴 생김새를 설명해 주었다. 정기택 안전원은 서류봉투에서 신원조회양식을 꺼내 1문1답 식으로 사관장의 신원과 가족 관계를 묻기 시작했다.

 7반 인민반장 송 아바이의 구술에

의하면, 사관장은 당원인 아버지 송기수 농장원과 어머니 염지순 농장원 사이에서 태어난 6남매 중 차남이었다. 형은 낙원군 림업사업소 노동자로 재직했고, 사관장 바로 밑의 남동생은 의주군 사회안전부 인민경비대에서 하사로 복무하고 있었다. 그 밑의 여동생 송영숙은 낙원군 중기계공장 선반노동자로 재직했고, 둘째 여동생 송명숙은 삭주군 방직공장에서 직조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막내 송영기는 낙원군 고등기술전문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친척으로는 두 숙부가 있었는데 큰 숙부 송기호 사무원은 책임지도원으로 재직했고, 둘째 숙부 송기만 사무원은 도시경영과 지도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 식민 시기에는 머슴살이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조국광복을 맞이하면서 토지를 무상분배 받았고, 또 무상으로 우당리 협동농장에 기탁한 이후부터는 줄곧 7반 인민반장과 같이 농사를 지으며 농장원으로 살고 있었다.

 내외가 노동당원이 된 지는 15년 정도 되었다. 조국해방전쟁(6·25 전쟁) 시기 치안대에 가담하거나 공화국을 버리고 남반부로 내려간 재남 가족은 없었다.

 그런 사상적 순결성과 토대가 입증되어 송기수 농장원의 두 형제들은 농장원 생활에서 해방되어 사무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자식들도 대처로 내보내 힘든 농사일만은 면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가 당의 배려로 겨우 한글을 깨우칠 정도로 배움이 일천했고, 평생 농사일을 하면서 살아 자식들의 진로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공화국의 전후 신세대들이 무리 배치되는 직장에서 당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처지였다. 숙부들을 제외하고는 가족 전체가 학력도 일천했으나 사상적 토대만은 노동당원이 되고도 남을 만큼 양호했다. 반장이 말했다.

 『얼마 전에 들판에서 영호 오마니를 만났는데 제대하면 혼례부터 올려야겠다고 체이(처녀)를 찾고 있던데.』

 『언제 제대한답디까?』

 『다음 달이라지.』

 『상사로 제대해 나오면 직장도 좋은 데 배치되갔지요.』

 『군에서 돈도 좀 모았는가 봐. 도시경영과에 있는 제 숙부한테 부탁해 얼마 전에는 집도 수리했소.』

 정기택 안전원은 인민반장이 구술해 주는 내용들을 다 듣고는 「신원조회 결과 변동사항 없음」이라고 판정을 내리고 그 밑에다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