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지금 쯤(25) 이 무렵, 우당리 분주소 정기택 안전원은 서류봉투를 챙겨들고 분주소 앞마당으로 나왔다. 공무용 자전거가 몇 대 서 있었다. 반짝거리는 새 자전거는 분주소장 김봉수 중위의 공무용 자전거이고, 산골길을 누비고 다녀 흙바지에 황토흙이 잔뜩 끼여 있는 자전거들은 분주소에 근무하는 8명의 안전원들이 일을 보러 나갈 때마다 타고 나가는 자전거들이었다.

 정기택 안전원은 자전거 짐받이에 서류 봉투를 꽁꽁 묶은 뒤 우당리 협동농장으로 들어가는 둑길을 타고 20여분간 자전거 발판을 밟아댔다. 동사무소와 문화회관이 나왔고, 그 뒤편으로 해발 634미터의 삼봉산이 구성시와 경계를 이루면서 벌방지대 쪽으로 계곡을 열었다. 그 세 봉우리 사이 펑퍼짐하게 분지를 이룬 골짜기에 180여 호의 협동농장원들이 30~40호씩 군락을 이뤄 사는 자연부락이 나타났다. 정기택 안전원은 그 자연부락 초입에 사는 7반 인민반장을 찾아갔다.

 『뉘기 없시요?』

 정기택 안전원은 개가 짖어대는 7반 인민반장 집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집 뒤 돼지우리 앞에서 죽을 주던 인민반장이 돼지죽 바가지를 내려놓으며 앞으로 나왔다.

 『아니, 어인 일로 여기까지.』

 인민반장은 평소 잘 알고 있는 정기택 안전원을 쪽마루로 안내했다. 조국해방전쟁 시기, 미군의 공중포격으로 큰채와 아랫채가 다 허물어지고 소실되어 아랫채 자리에는 잿간과 마굿간과 창고를 겸해서 쓸 수 있게 흙벽돌로 곳간을 지었고, 큰 채 자리에는 소실된 기와집에서 빼낸 기둥과 서까래로 3칸짜리 일자형 숫돌기와집을 지었다. 7반 인민반장은 그 때 지은 집에서 지금까지 계속 눌러 살고 있는 터였다. 말하자면 그는 우당리 협동농장 큰 골짜기 지킴이었던 것이다.

 『정 아바이(나이가 지긋한 남자를 부를 때 쓰는 북의 일반적인 호칭)한테 뭐 좀 물어 볼 사업(일)이 있어 왔습네다.』

 『여기라도 좀 앉으시라요. 뭔 일이 알고 싶소?』

 7반 인민반장은 손등에 묻은 돼지죽 찌꺼기를 한 손으로 썩썩 문지르며 자리부터 권했다. 정기택 안전원이 다시 밖으로 나가 짐받이에 묶어놓은 서류봉투를 빼오며 물었다.

 『큰 골짜기 안에 살고 있는 송 아바이 잘 아시지요?』

 『알다마다요. 우당리에서 태어나 나하고 일생을 같이 살았는데… 왜 송 아바이한테 뭔 일 있소?』

 『아니요. 그 집 큰아들이 올해 입당하는 모양이야요. 기래서 신원조회 의뢰가 들어왔시요, 소속 부대에서.』

 『황해북도 금천군 어디에서 경리사관으로 있다지. 군에 나간 지 벌써 10년 넘었어.』

 『맞소. 군사칭호는 상사이고 금년 4·15 때 입당이 된 모양이야요. 이름은 송영호라고 합디다.』

 송 아바이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