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지금 쯤(18)

 곽병룡 상좌는 중앙당 간부과 지도원으로 근무하는 셋째동생(남동생으로는 첫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 공부 마칠 때까지는 형제들 중 하나라도 평양에 있어야디. 다 지방으로 조동(조직적인 이동:전출)되면 아이들 뒤는 누가 봐주나. 힘들더라도 몇 년 더 참아야디. 계수 씨는 어드렇던가?』

 『그럭저럭 잘 지내는가 봅디다. 오마니 진료결과는 모르고 계십네까?』

 『결과는 한 며칠 기다려 봐야 알 수 있다나. 두 누이들은 별일 없던가?』

 『모르갔습네다. 저도 바빠 근간에는 가보지 못했습네다.』

 『나가 봐라. 마쳐야 될 일이 있어 앉을 시간도 없다.』

 『기러지요. 인구는 요사이 어떻답디까?』

 곽병기 대위는 형과 같이 사무실을 나오며 장조카의 소식을 물었다.

 『모르갔다. 군대에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니까 잘 있갔디. 그놈은 네 할머니가 너무 싸구 돌면서 키운 놈이라 가족 전체가 좀 랭정해질 필요가 있다. 너두 너무 신경 쓰지 말라. 운전이라도 제대로 익혀서 나오게. 기러면 어디 자리 없갔어?』

 『알갔습네다. 형님 뜻이 기러시다면 더 두고 보갔습네다.』

 『기래, 바쁘더라도 집에 들어가 오마니 뵙구 가라. 잉?』

 곽병룡 상좌는 2층까지 같이 걸어 내려와 동생을 보내고 기요과(기밀문서를 취급하는 과)로 들어갔다. 모내기전투 나갈 과원들을 불러모아 놓고 담화를 하고 있던 기요과장이 반갑게 곽병룡 상좌를 맞았다.

 『거어, 전연지대에 근무하는 우리 군(郡) 자재들 입당용 신원조회 끝났나? 사단 정치위원들이 이번 문화일(토요일)까지 조회결과 보내 달라구 전화했던데?』

 『관내 분주소(파출소)에다 내일까지 마쳐달라고 조치를 취해 놨으니까니 이번 주 문화일까지는 보낼 수 있습네다. 염려 마십시오.』

 『그 문건은 동무가 책임지고 마무리 지어 넘기라.』

 곽병룡 상좌는 군 당 회의에 나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다시 안전부장실로 올라갔다. 남들은 낙원군 사회안전부 최고수장이라고 부러워하고 있지만 그의 하루는 늘 이런 식이었다. 찾아오는 사람 만나고, 상급기관에서 걸려오는 전화 받고, 회의에 참석하고, 정치부 부부장과 마주 앉아 낙원군의 치안유지 문제와 호안(護安) 방향을 토론하고…. 그러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안전부장실로 들어와 안해가 싸준 벤또(도시락) 뚜껑을 열어놓고 식은 밥 덩어리를 몇 저분 떠먹다 결의대회에 나가는 것이 그의 하루생활의 전부였다.

 곽병룡 상좌는 군 당 회의 마치면 관내 분주소를 한 바퀴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나들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