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사이에 박힌 선전 선동일꾼들이 계속 강당이 떠나갈 듯 외쳐대자 학교장과 구역 교육위원회 당비서가 고개를 끄덕여댔다. 사상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강당 안의 분위기가 이만큼 전투적 분위기로 고조되어 있으면 사상투쟁의 목표와 효과는 상급기관에서 요구하는 것만큼 달성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김문달 중좌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요과장은 인화를 엄호하고 있는 안전원들에게 인화를 아무 탈없이 집에까지 잘 데려다주라고 지시를 내린 뒤 강당을 나갔다.

 안전원들은 지시대로 인화를 데리고 강당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까 눈이 부신 초가을 햇살이 뽀얗게 메말라 있는 학교 운동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인화는 후끈후끈 지열이 끓어오르는 듯한 운동장을 안전원들과 함께 터벅터벅 걸어나오며 학교 본관 중앙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그새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불려 들어가 지금까지 붙잡혀 있었으니 무려 세 시간이나 사상투쟁의 주인공이 된 셈이었다. 그녀는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은 「배신자의 려동생」이라는 말과 「그 가족」이라는 말을 혼자 되뇌며 학교 운동장을 걸어나오다 자신을 뒤따라오고 있는 안전을 쳐다봤다.

 『안전원 아저씨, 우리 큰오빠가 진짜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났습네까?』

 인화는 아직도 자신의 큰오빠가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났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 다시 물어보았다. 옆에 서서 말없이 따라오던 안전원은 측은한 시선으로 잠시 인화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길세다. 아까 기요과장 동지가 여러 학생들 앞에서 길케 말한 것으로 보면 니네 큰오빠가 남조선으로 넘어간 것은 틀림없는 것 같구나. 너는 아직도 기걸 모르구 있었네?』

 인화는 『네』 하면서 안전원을 쳐다봤다.

 『안전부장 동지도 요사이는 경황이 없겠구나…집안에 기런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인화 학생은 오마니 아버지 말씀 잘 듣고 굳건하게 생활하도록 해라. 아까 강당에서는 사상투쟁한다고 인화 학생을 배신자의 려동생이라고 매도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인화 학생한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우리 조국의 법이 길케 되어있으니까니 인화 학생이 길케 희생되는 것이지…암튼 오마니 아버지 말씀 잘 듣다 보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릴 테니까 삐뚤어진 짓 하지 말고 집에서 할머니 잘 위로해 드려라. 할머니도 귀여운 큰손자가 남조선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니….』

 인화는 안전원 아저씨가 평소 자주 아버지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마음속의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안전원 아저씨? 아까 사상투쟁을 할 때 상급생 오빠들과 언니들은 저를 보구 배신자의 려동생이라 하면서 은혜읍에서 추방하자고 결의하던데 기카면 앞으로 우리 가족은 어데로 추방되는 겁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