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배인은 이른 아침부터 욕설을 뱉어대면서 흥분해댔다. 그래도 수용자들은 관리소에 복무하는 보위원들이 중간에서 배급품을 잘라먹지 않고 제대로 주면 누가 목숨 걸고 도적질을 하겠는가 하는 표정으로 들은 둥 만 둥 했다. 옥남 언니와 옆방 언니들은 하도 욕을 얻어먹어 이제는 그런 욕을 듣는 것이 오히려 더 마음이 편안하다면서 복순에게 겁먹지 말라고 했다. 복순은 되바라질 대로 되바라진 옆방 언니들의 표정과 행동거지들을 지켜보다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김유순 방장이 아침청소부터 하자고 했다. 복순은 언니들과 어울려 집안 청소를 했다. 하얗게 서리가 덮여 있던 집 앞마당과 큰길은 금세 깨끗해졌다. 복순은 옥남 언니를 따라 산밑 샘터까지 달려가 세면을 마친 뒤 조반을 지을 물을 길러 물지게에 지고 왔다.

 『물지게는 어데서 길케 져봤네?』

 물통 두 개를 물지게 양쪽 고리에 걸어,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겨놓자 옥남 언니가 대견하다는 듯 뒤따라오며 물었다.

 『세대주와 결혼해 전연지대에서 살 때 밥지을 물은 늘 물지게로 져다 먹었시요.』

 『전연지대에도 물이 귀하네?』

 『거기도 여기처럼 첩첩산중이라요.』

 『기래, 여기도 전연지대라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살아. 기래야 자기 발로 관리소 정문을 걸어나갈 수 있어?』

 『나 같은 사람도 관리소 정문을 두 발로 걸어 나갈 수 있갔시요?』

 『3, 4년씩 교화소살이를 하는 사람들도 때가 되면 두 발로 걸어 나가는데 복순 동무가 어때서? 6개월은 잠깐이야.』

 『기래도 몸이 남 같잖아서요….』

 『어젯밤 방장 언니 이야기 들었잖아. 보위원들이나 부지배인이 뱃속의 아기 지우라고 볶아댈 때마다 그들의 어깨도 주물러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면서 몸을 줘. 서너 달 지나고 나면 몸을 줘도 아기는 떨어지지 않아….』

 『길케라도 내년 봄까지 견딜 수 있으면 다행인데 행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교화소살이는 걱정하면 끝이 없어. 정 다급하면 보위원들한테 아랫도리 벗어주고 매달린다는 각오를 하고 마음 편하게 살아. 기래야 살아 남아….』

 복순은 먼저 들어온 언니들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두 물통에다 가득가득 물을 길어오자 김유순 방장은 큰 일꾼을 하나 얻었다는 표정으로 흡족해하며 몰래 숨겨 놓은 배급식량 자루를 꺼내 왔다.

 방장 언니는 꽁꽁 묶어놓은 식량자루를 풀었다. 그리고는 조그마한 사기공기로 나붓하게 세 번 식량을 퍼내 주었다. 강냉이쌀 70%에 현미 30%가 섞인 잡곡 500그램으로 세 사람이 한 끼를 때워야만 배급 날까지 연명한다는 것이다. 부식은 남새김치와 솎음배추를 썰어 넣고 된장국이나 끓여 먹자고 했다. 복순은 옥남 언니와 함께 가마에다 밥과 국을 안쳐 불을 지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