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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도시'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피렌체는 중세를 뚫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르네상스를 완성한 곳이다. 창조이데아를 담은 르네상스를 이룩한 배경에는 내로라는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테, 보카치오,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등 셀 수 없는 예술가와 과학자들이 피렌체에서 창조 에너지를 뿜어내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만들어낸 창조산업은 오랜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14세기에 싹을 피운 르네상스 기운은 메디치가문의 오랜 후원을 거쳐 16세기에 이르러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 조용한 흐름이 지속되다가 한 순간에 르네상스의 폭발력을 표출했다는 것도 눈여겨볼 포인트이다.
21세기 인천이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 돌아온 창조시대에 주도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와 달리 21세기의 승부처는 산업육성일 것인데, 산업육성 측면에서 창조시대가 산업화시대와 다른 결정적 차이는 압축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산업화시대에는 이른바 산업단지조성과 같은 산업정책이면 이전에 없던 기업집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창조시대에는 산업정책 이외에 인재들의 정주조건을 포함하는 도시 인프라를 동시에 갖추어야만 가능하다. 보통 도시개발과 산업육성을 한정된 자원을 나누는 경쟁 아이디어로 보아왔지만, 실제로 창조시대에는 이 두 개념이 잘 정렬되어야만 창조도시가 될 수 있다. 동북아 지식허브를 꿈꾸는 인천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또 과수원이었던 실리콘밸리가 변모하는데 최소한 40년 이상이 소요되었다는 것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모태로 불리는 '휴렛패커드(HP)'가 1934년에 시작했지만, 반도체산업의 아버지 격인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등장한 것은 1956년에 이르러서였다. 이 기간만도 20여년이 걸렸다. 그러나 본격적인 파급효과의 시작인 '인텔'은 1968년에 창업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30년 이상이 필요했다. 이 과정을 볼 때 실리콘밸리는 분명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더욱 흥미로운 포인트는 그 과정 속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의 존재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의 단어인 '티핑포인트'는 한 사회적 현상이 들불처럼 번지는 마법의 순간을 말한다. 티핑포인트 이전에는 잠잠하게 진행되지만, 일단 그 포인트에 도달하면 한꺼번에 퍼져 다른 동력들을 압도하는 힘이 발휘된다. 그 변곡점은 또한 순간적으로 폭발한다는 극적인 요소도 담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티핑포인트는 최소한 1956년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창업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 반도체 산업에서 기라성 같은 첨단기업들이 줄지어 나타났던 샤워효과가 보이기 때문이다. 티핑포인트에 도달하기 전에는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예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창조도시로서 모습 갖추기는 비례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티핑포인트라는 임계점에 도달하기 이전까지는 조용하게 진행되지만 일단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적인 힘을 뿜어낸다. 다시 돌아온 창조의 시대, 인천은 지금 그 티핑포인트를 향해 가고 있다. 더 빠른 성과를 기대하는 의견들도 있지만, 멀리가자면 천천히 가는 구간도 있다.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티핑포인트를 넘어서게 되면 추진동력은 더욱 가속도가 붙으면서 지식산업육성과 도시혁신이 서로 선순환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티핑포인트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창조적인 과정이라는 점이다. 즉, 창조시대에서는 발전경로 자체가 창조의 대상이며 열린 미래이다.
글로벌 창조도시의 이정표인 티핑포인트로 가는 경로에 인천이 물려받은 유산(遺産)들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산업화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제조업 역량을 살리면서 지식창조산업의 밑천으로 삼는 지혜, 혹은 지역해양자원들을 고부가가치 지식복합산업으로 발전시키는 지혜들이 모아진다면 티핑포인트 이후의 모습이 더욱 근사해질 것으로 믿는다.



/손동원 인하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