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따라라라라 따라라라라… ." 뭉크의 그림 '절규'의 배경색인 휘뿌연한 회색 하늘. 바람 속의 먼지 같은 좁쌀 인생. 허공에 멍한 시선을 주니 불현듯 낡은 트럼펫 소리가 들려온다.

페테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 어린 시절 흑백 TV 주말의 명화에서 만난 아주 느린 영화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참 재미 없는 영화였는데 음악과 영상이 아직도 머문다. 탐욕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잠바노와 그를 사랑한 집시여인 젤소미나. 같은 길 위를 걷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간 두 사람. 뒤늦게 자신을 사랑한 걸 안 잠바노… 그러나 이미 세상을 등진 그녀.

이 영화는 나의 삶에 녹아들어, 멜랑꼬리한 날에 고개를 쑥 내민다. 길….

요즘 제주 올래길이 유행이다. '올래'는 큰길에서 집의 입구, 즉 '집으로 들어가는 위한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

제주도에는 원래 대문이 없고 대신 정낭이라는 것이 있는 데 이 정낭을 이어주는 골목길을 말한다. 그런데 이 올래는 육지의 골목길과 달리 바람을 이겨내는 지혜의 산물로 길의 형태가 묘하게도 완만한 S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서 올래는 강풍을 막아주는 것 외에도 집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휴식없이 달려 오다보면 삶 속에서 찌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때 훌쩍 떠나본다. 배낭하나 벗하고, 아니면 누구와 벗하고 훌쩍 이곳에 온다. 그리고 걷는다.길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제주민의 올래길에서 우리는 '후회하는 법'이란 삶의 화두를 슬픈 미학으로 그려낸 이 영화를 떠올린다. 그런 현대인이 많아서인지 올래길을 찾는 도시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제 그 길은 육지로 올라왔다. 서울시는 일주 트레킹 코스와 그린트레킹서클과 북한산 둘레길을 조성해 올레길에 버금가는 200㎞의 서울 일주 트레킹 코스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경기도의 일선 자치단체에서도 제주 올래길과 유사한 둘래길 등을 조성하고 있다. 길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사연을 만들어 간다.

얼마 전 수원시 공무원이 발표한 논문을 선물받았다. '수원 화성 옛길의 변화 특성 분석 및 보전 방안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이다. 이 논문의 요지는 1997년 12월 4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결정된 화성(華城) 활성화 방안이다. 그는 여러 방안 중에서 길이라는 소재를 택했다. 그러니까 옛 길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조선조 22대 정조대왕 때 만들어진 화성 내 길이 일제강점기, 6·25한국전쟁, 근대화를 거치면서 단절되고 흡수됐다.

지금은 우리가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 기억 속에 사라진 그 길에 대한 것이다. 그는 업무 상 화성과 인연을 맺으면서 12년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요즘 유행하는 올래길 이전에 옛길에 대해 고민 한 것이 된다.
화성은 이미 세계적문화유산이라는 외형을 갖춰 많이 이들이 방문하고 있다. 방문객은 차를 타고 한바퀴 돌거나, 거대한 성곽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그리고 떠난다. 가끔 화성행궁 등에서 벌어지는 축제성 행사를 관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성에서 있었던 일반인들의 삶, 애환 등 생활속에서 벌어지는 생활 문화는 보지 못하고 떠난다. 화성과 화성 속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것은 다른 것으로 기억할 듯하다.

세계인들에게 화성을 알리고 화성에 또 오고 싶어하게 하려면 화성의 성곽과 화성 속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로 생각하게 할 때 가능한 것 같다. 옛길 속으로 들어가면 화성 속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또 그들의 생활상도 보고, 문화도 체험하고…. 이 같은 부푼 기대로 이 논문집을 열어봤다.

길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해 주는 통로다. 옛길의 복원은 세계와 시대를 연결하는 복원의 길 같다는 생각을 방화수류정에 서서 해봤다.
 
/김창우 경기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