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의 꿈, 江華 눈 뜨다 / 프롤로그
778년 전, 강화도의 이름은 '강도'(江都) 였습니다. 1232년 고려왕조는 수십만 명이 울부짖는 통곡과 함께 산을 넘고 강과 바다를 건너 마침내 강화에 닿았습니다. 강화에 도착한 고려인들의 눈에서는 시퍼런 불꽃이 이글거렸습니다. 그것은 침입자에 맞서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는 결의였습니다. 이를 두고 한 역사학자는 '의로운 항전'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고려왕조는 이 때 강화도에 나라의 심장인 '수도'(首都)를 세웁니다. '강화현'이었던 강화가 '군'(郡)으로 승격한 뒤 '강도'라 불리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강도의 시대'는 정확히 1232~1270년을 가리킵니다. 고려왕조가 몽고(元)와의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한 뒤 저항한 39년간을 말합니다. 고려왕조는 이 기간, 세계 그 어느 나라도 감히 대적할 수 없었던 몽고에 맞서 장장 39년간 처절한 전투를 벌입니다.
고려왕조 최후 저항세력인 삼별초는 고려왕조가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 이후에도 항복하지 않고 이동을 계속하며 몽고에 끈질기게 항전합니다. 1270년 강화에서 진도로 간 삼별초는 다시 제주도로 건너갑니다. 최후의 순간으로 알려진 1273년에도 삼별초는 소멸하지 않고 일본 오키나와로 향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127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의 기와가 오키나와에서 발견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몽고군과 고려의 싸움은 한마디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몽고가 거대한 해일처럼 세계대륙을 집어삼키던 시기, 동양의 작은 나라 고려가 무릎을 꿇지 않고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버텼다는 사실은 '기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강화도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허리가 휠 정도로 '성'을 쌓았습니다. 손톱이 빠지고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팔만대장경'을 깎고 다듬었습니다. 온 몸을 불살라 호국의 염원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몸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오직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깊은 충절에서 나온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렇게 8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강화도에선 고려왕조의 흔적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습니다. 고려왕실이 머물렀던 '고려궁지'와 팔만대장경을 탄생시킨 '선원사지터', 800년의 기품이 흐르는 '봉은사지 5층석탑'은 빛나는 고려의 예술혼으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고종이 잠들어 있는 '홍릉'과 왕비들의 무덤, 당대 최고 문장가 '이규보의 묘'와 같은 고분에서는 찬연한 고려의 영혼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무수한 보물들이 어둠 속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강화를 '500년을 호령한 왕조의 수도'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역사학자들조차도 말입니다. 즉 '고도'(古都)로 인식하기 보다는 고인돌의 고장이나 조선시대 제2의 수도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왕조의 수도였다는 사실에 비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강화도와는 달리 경주, 부여, 공주는 고도로서 위상을 드러내며 세상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인천일보는 세계의 문화유산인 '강화 속의 고려'를 흔들어 깨우기로 했습니다.
본보가 강화군과 특별공동기획으로 '고려왕조의 꿈, 江華 눈 뜨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려왕조의 꿈 江華 눈 뜨다'는 강화도가 품고 있는 고려왕조의 유산을 재조명하는 기획입니다. 이번 기획에선 800년 전 고려의 흔적을 재발견하고 2010년 강화도의 모습을 애정깊은 눈길로 구석구석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텔링'을 가미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선사할 생각입니다. 역사학자의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관점도 곁들여집니다. 강화도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이형구(선문대학교 교수) 박사는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강화도에 대한 개괄적 설명을 통해 전문적인 시야를 틔워줄 예정입니다.
'고려왕조의 꿈, 江華 눈 뜨다'에는 '역사'와 '이야기'와 '미래'가 공존합니다. 강화도가 비로소 800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번 기획을 통해 고려왕조의 숨결이 뜨겁게 호흡하는 강화도의 2010년 모습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인천일보·강화군과 함께 떠나는 흥미진진한 여행을 통해 독자여러분들은 800년을 관통하는 한줄기 섬광을 발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천일보와 강화군이 야심차게 준비한 특별 공동기획 '고려왕조의 꿈, 江華 눈 뜨다'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글·사진=김진국기자 blog.itimes.co.kr/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