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마와 도박에 빠져 고객들이 담보대출을 신청한 것처럼 대출서류를 꾸며 수십억원을 횡령한 농협중앙회 수원시내 모 지점 간부가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여신업무과장으로 근무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시행한 토지를 분양받을 경우 우량대출로 인정돼 자신이 직접 대출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브로커 2명과 짜고 신용상태가 양호한 고객 9명이 토지를 분양받은 후 이를 담보로 대출금을 받은 것처럼 약정서 등을 위조해 31억원을 꿀꺽 삼킨 것이다.
농협의 경영이 너무 허술해서 그런가. 아니면 한 간부의 머리가 기상천외하게 뛰어나서 그런가. 아무튼 자신이 근무하는 금융권에서 거액의 부정대출을 받아 먹어치운 일이 발생했는데도 내부에선 정작 수개월 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키 힘들다. 뿐더러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여신 담당 내부 조직원들의 태도 또한 한심스럽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문서가 가명이나 남의 명의로 돼 있는 데야 어떻게 그의 짓인 줄 알 수 있었겠느냐고 발뺌할는지 모르지만 그렇게는 잘 발이 빠질 수가 없다. 일반 대출 상대에겐 그 많은 절차를 거치고 진저리가 나도록 확인 또 확인을 되풀이 하는 것이 금융권의 상례인데 어째서 최고 결재권자도 아닌 그에게만 그런 절차도 없이 무사 통할 수가 있었던가. 왜 그에게만 그 길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 뒷구멍이 어떻게 돼먹은 것인지, 철저히 가려내져야 할 것이다.
이같은 범죄행위로 농협 직원들이 구속되는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쯤 됐으면 정신을 바짝 차릴 만도 한데 어쩌자고 직원에 의해 그대로 농락되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다시 농협의 신용에 먹칠을 한 꼴이 됐다. 그것은 비단 직원에게 사기를 당한 무능의 소치로서뿐 아니라 일반에겐 지겹도록 까다로운 확인절차를 강행하면서도 내부직원에겐 그토록 허술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는 데서 불신을 넘어 비난을 사기에 족한 것이다. 사실이지 이런 일들이 빚어진 데는 그 조직원들이 농협이념을 망각한 행태에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