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크 칼럼 ▧
작년 12월9일 저녁 파라다이스호텔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2009 인천예총인의 밤' 행사에 참가한 회원들이 파티장을 박차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유인즉슨, 홍종일 인천시 정무부시장의 '시립일랑미술관' 관련 발언 때문이었다. 홍 부시장은 이날 '인천시립미술관을 먼저 지은 뒤 시립일랑미술관을 고려하겠다'는 요지의 인사말을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예총집행부에는 회원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한참 민감한 시기에 부시장에게 인사를 시킨 이유가 무엇이냐, 시립일랑미술관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왜 여기서 하게 했느냐"는 게 항변내용이었다.
당시 인천예총 이사회는 시립일랑미술관을 짓겠다는 시에 반발해 시장상도 거부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시관계자를 초청하지 말았어야 했다는게 회원들의 불만이었다. 얼마전 회장선거를 치른 인천예총 산하 A협회는 재검문제로 출마했던 후보간 갈등을 겪었다. B협회는 2년전, 회장선거와 관련해 고소고발 사태에까지 치달은 바 있다. 이런 예총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작품'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아닌, '자리'를 놓고 싸우는 정치조직의 단면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시민들은 인천예총을, 흐르는 조직이 아닌 멈춰있는 조직으로 생각한다. 공연과 전시는 '집안잔치'로 전락했고, 예산을 타내기 위해서인지 시와의 주종관계로 비쳐지기 일쑤다. 일부 협회는 무리하게 회원을 확장하다보니 전문예술인이 아닌 '아줌마부대'를 양산한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시민의 예술권 향유와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반세기 이상 노력해온 최대 문화예술조직이 회원들만의 단체로 변질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하려 해도 지역예술엔 냉담한 시선을 보내는 관객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엔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잘안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예술혼'을 보여주며 지역을 빛내는 예술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천에서 이뤄지는 많은 작품을 만나러 갔을 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관객이 민망할 정도로 썰렁한 '관람객 부재'를 목격할 때마다 인천예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된다. 관객 수준을 탓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동이 숨쉬는 작품은 천리길을 걸어서라도 가서 보는 게 대중의 심리다. 소수 딜레탕트나 예리한 심미안을 지닌 비평가들은 물론이고, '문외한의 대중'에게까지 어필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좋은 작품이 아닐까.
지금보다 여건이 열악했던 1940~70년대 인천은 이러지 않았다. 고유섭 선생의 논문이 우리나라 미학의 씨를 뿌렸고, 유희강 선생의 좌수서가 서예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한상억·최영섭 선생의 불후의 명곡 '그리운 금강산'이 온 겨레의 가슴에 울려 퍼졌고, 나아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같은 세계 성악가들의 입에서까지 흘러나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시민들 삶의 고단함을 풀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총의 노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예총의 지금 위상이 과연 빛나는 옛 역사에 걸맞는 모습인가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는 19일, 앞으로 4년간 인천예총을 이끌어갈 제10대 집행부가 꾸려진다.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고여 있는 예총의 봇물을 터뜨리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테면 시립미술관, 예술대학 건립과 같은 현안 해결을 위해 두팔을 걷어부치고 나서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인천시나 인천문화재단과 같은 관공서에 종속되지 말고 '동등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예술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에서 발현하기 마련이다. 이를 위해 문화를 바라보는 시야와, 작품을 피워내는 역량에 있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과제들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서로 맞물려 있는 사안들이기도 하다. 머잖아 태어날 새집행부를 통해 인천예총이 '썩어도 준치'였음을 발견하고 싶다.


/김진국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