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뭐인가. 공판 건에 대해 당에서 무슨 연락 없었소?』

 안전부장은 탁자로 내려앉으며 물었다.

 『아, 어젯밤 부장 동지 나가신 다음에 기요과장이 서류를 들고 와서 보고를 못 드렸습네다만, 청년돌격대 아이들 3명 모두 교수형에 처하라는 결정 지시서가 내려왔습네다.』

 김문달 중좌가 마주 앉으며 옆구리에 끼고 들어온 결재서류철을 내놓았다. 곽병룡 상좌는 잠시 당에서 내려보낸 결정지시서를 읽어 내려갔다. 몇 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악질 반동분자에게는 한 알의 총알도 낭비할 필요가 없다」라는 지도자 동지의 1984년 지시가 적혀 있고, 그 밑에 당은 「지난 모내기전투 때 떼거리강간사건을 일으킨 동범(공범) 3명에게 교수형에 처할 것을 결정 지시하니 지시대로 이행하고 그 후과(결과)를 보고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곽병룡 상좌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허공을 지켜보다 담뱃갑을 끌어당겼다.

 『기거 참! 비사회주의적 범죄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니 지도자 동지도 다른 방책이 없으셨던 모양이디. 모두 다 목매달아 죽이라는 지시를 내려 주신 것을 보면?』

 『다른 시·군 지역에서는 지난해부터 기렇게 처형해 왔다고 합네다. 지도자 동지의 팔사지시(1984년 지시)에 따라.』

 『기럼 앞으로도 반동분자들은 모두 교수형이나 화형으로 처형해야 된다는 말이오?』

 하고 곽병룡 상좌는 김문달 중좌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김문달 중좌는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도 당위원회가 우당리 떼거리강간사범들을 화형으로 처형하라고 지시서를 내려 주지 않은 점에 대해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만약 우리 낙원군에 기런 지시서가 떨어졌다면 어칼 뻔했습네까? 부장동지나 저는 화형으로 반동분자를 처형해 본 경험이 없는데 두 눈 멀쩡히 뜨고 살아 있는 그놈들을 화장하듯 태워 죽일 수도 없구….』

 『기러구 보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구만. 화형으로 처형해야 할 반동분자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는데….』

 곽병룡 상좌는 아무 생각도 없이 반동분자란 말을 내뱉어놓고는 도로 주워담을 수도 없어서 혼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남반부로 넘어간 인구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놈의 자식이 어케 순간순간 애비 가슴에 일케 아픔을 남길까?

 그는 담배 맛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불만스럽게 담배를 비벼 껐다. 인구란 놈이 남반부로 넘어가기 전에는 반동분자란 겉 다르고 속 다른 사과나 배처럼 그들과는 애초부터 종자가 다른 인간들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은 터무니없는 편견에 불과했다. 혁명열사의 피를 물려받은 그의 자식도 남반부로 넘어갔다는 사실이 당으로부터 공개되는 순간부터 반동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도 덩달아 반동분자의 아버지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