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바치는 기도(10)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지금 와서 그걸 후회하면 뭘 하나. 지금은

때늦은 후회보다 경각에 다다른 내 목숨부터 살려놓은 다음에 반성이

필요해. 어떻게 해야 그날의 잘못을 평생 뉘우치며 살아 갈 수 있을까?

 인구는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병실을 왔다갔다했다. 그러다 또

고성기 방송을 타고 달려온 남반부 에미나이의 말을 되씹기 시작했다.

 남반부는 정말 죄 지은 자가 진정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면 재기의

기회를 약속하는 사회일까? 그런 말을 믿고 남반부로 내려갔을 때

북조선에서 군대 화물자동차를 엎어먹고 사관장까지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고성기에 대고 불어대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 때는

남조선에서도 나를 파렴치한 악질 반동분자라고 매도하며 죽이지는 않을까?

 아니야. 남반부 그 에미나이는 분명히 말했어. 자신도 모르는 순간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시

통회하며 올바르게 살아보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자유대한으로 넘어오라고.

 몇 년 전에 넘어간 림정수와 김경호도 언젠가 고성기방송에 나와서

그랬지 않았던가? 남조선은 북조선처럼 공개총살형이 없다고. 그런 것을

봐도 그 에미나이의 말은 믿어도 될 것 같애.

 조금 전에도 남반부 에미나이는 그랬지 않았던가? 여러분의 진정한

조국, 자유대한은 자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재기의 기회를 약속하고 관용을 베푸는

사회라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용단을 내리라고. 자유대한으로 오는 길은

늘 열려 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설마 죽이기까지야 하겠는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중요한 것은 공개총살형을 피하는 것이다.

죽이지만 않는다는 보장이 있으면 남반부 아니라 미제의 소굴까지라도

달려가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설사 모험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공병대

선임하사처럼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선혈을 내뿜으며 숨진 공병대

선임하사의 모습은 이제 생각만 해도 숨이 멎을 것 같다.

 달아나자. 리상위가 강영실 동무와 성복순 동무까지 끌고 와 앉혀놓고

바른 대로 자백하라고 다그치기 전에 이 군의소를 빠져나가자. 그래야

벼랑 끝까지 내몰린 내 목숨을 구할 수가 있다.

 인구는 다시 한번 올바르게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도

남쪽으로 내려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언제, 어떻게, 어느 길을 선택해야 무사히

남반부 국방군 초소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