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바치는 기도(4)

 자신도 모르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관장 동지와

후방물자를 빼낸 일까지 자백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이미 저승에 가서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사관장 동지와 굳게 약속한 일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보위원들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바른 대로 자백하라고 다그치면 견딜

재간이 있을까? 자신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실토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 그도 틀림없이 공병대 선임하사처럼 민둥산 밑으로 끌려나가 여러

동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총살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어총을 하고 선 자동소총 저격수들의 총탄 세례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허연 보자기로 얼굴을 덮어씌우는 것도 끔찍스러웠다. 타앙 탕, 넓은

벌판을 울리면서 하얀 연기를 내뿜던 열여덟 발의 총성은 생각만 해도

사람을 까무러치게 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총성의 끝은 바로 인생의

끝이었고,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인구는 다시 침상에서 일어나 창문

옆으로 다가갔다.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가 뜸해지자 남반부에서 보내는 고성기방송이

들려왔다.

 『꿈을 잃은 그대에게!』

 귀에 익은 음악소리와 함께 또 남반부 그 에미나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구는 자욱하게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바깥을 내다보다 자신도

모르게 남반부 고성기 방송에 귀를 모았다.

 『인민군 여러분! 축축하게 젖은 전연지대의 잠복초소에 엎드려

오늘밤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처럼 일찍이 고향을 떠나와

인민군에서 군대생활을 하다 월남하신 여러분들의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민군 하전사들은 5대 불만과 3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요.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5대 불만은, 개인 기본권 억압에서

오는 불만, 낙후된 병영환경에서 오는 불만, 차별대우에서 오는 불만,

계속적인 전쟁준비 강요에서 오는 불만, 군부대내 김정일세력 확장에서

오는 불만을 말한다고 해요. 그리고 3대 불안은, 계속적인

사상검토사업에서 야기되는 신변 위협, 회생 불가능한 엄격한

책벌주의에서 야기되는 생명 위협, 제대 후 성분분류에서 야기되는 진로

위협을 말한다고 해요.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두렵고 피가 마르는

불안은 공개총살형 같은 회생 불가능한 책벌주의라고 해요. 사람은 신이

아닌 이상 누구나 완벽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한두 번씩 과오나 실수를 범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런 실수나

과오를 범했다고 해서 뉘우쳐보고 바르게 살아볼 수 있는 기회마저 주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총살형을 집행한다면 그 총살형을

당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