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배식대 앞에서 밥과 국을 받아 식탁으로 왔는데 숟가락이 없었시요. 그래서 다시 배식대 앞으로 가서 숟가락을 가지고 왔는데 그새 누군가가 내 밥그릇의 밥을 덜어 가버렸시요. 그런 밥도둑들 때문에 저녁밥은 절반도 못 먹었시요. 응 응….』

 찔찔 짜는 고등중학생을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저려왔다. 흡사 돼지서리를 하기 전날 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남철 전사는 몇 숟가락 떠다만 자기 밥그릇을 고등중학생에게 밀어주었다. 밤이 깊어지면 묻어 둔 돼지고기를 파내 다시 삶아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배가 고픈 느낌도 없고 악착스럽게 밥그릇을 다 비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고등중학생은 이것이 웬 횡재냐 하는 표정으로 국을 밥그릇에 부어 걸신스럽게 퍼먹기 시작했다.

 박남철 전사는 식당을 나와 군중문화오락회가 열리는 곳으로 걸어가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공화국 사회는 청대(덜 익은 옥수수)서리를 하든 돼지서리를 하든 수단껏 먼저 해먹는 놈이 가장 똑똑한 놈이 되는 사회라는 말을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전 식당에서 만난 그 고등중학생처럼 분배받은 자기 밥을 도둑 맞았다고 울고 있어도 후방부 경리책임자나 조직의 규율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교원이 가엾게 여기며 억울하게 잃어버린 분량을 채워주는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비뚤어진 것을 바로 잡아 주는 사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사상적 순결성과 지도자 동지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어버이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남의 물건을 수단껏 훔쳐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회였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절대로 배가 고파 청년돌격대 생활 못하겠다고 가슴 아픈 사연을 고향으로 보내며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 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고 이를 깨물었다. 사바사바를 하든 도적질을 하든 남들처럼 현지에서 모든 걸 해결하며 좀 강하게 살아가리라고 그는 굳게 마음먹었다.

 『군중문화오락회 모엿!』

 농기계관리소 앞에 도착했을 때 돌격대 중대장이 외쳤다. 박남철 전사는 리상혁 전사와 함께 관리소 앞마당에 자리를 깔고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매일 40분간 실시되는 군중문화오락회 시간이 되면 모내기전투에 시달린 대원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분조별 노래 경연이나 예술소조의 익살스러운 연극 공연 등으로 피로를 풀어주었다. 그렇지만 취침시간 이후 산으로 올라가 어제 먹다가 남겨 놓은 돼지고기를 삶아 술을 마시자고 약속한 뒤끝이라 박남철 전사는 군중문화오락회가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모내기전투가 종반으로 접어드는 시기라 중기계공장 예술소조까지 찾아와 재담과 노래까지 불러주고, 돌격대원들을 불러내어 아코디언 반주까지 넣어주며 신명 나게 해 주었지만 김만호 전사와 리상혁 전사도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