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 우는 사연(21)

인근에 있는 외화벌이 술공장에 도라지나 더덕, 그 외 살구ㆍ앵두ㆍ들쭉 같은 우림술(과일ㆍ산열매 등을 술에 담가 우려낸 술) 재료를 싣고 수매하러 가는 날 거기 근무하는 지도원들에게 돈만 좀 찔러주면 술은 뒷방치기로 얼마든지 구해 올 수 있다고 했다. 박남철 전사는 공화국에 그런 곳도 있느냐며 혼자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감탄하다 숙소로 돌아왔다.

 『멍멍이 구해 놨으니까 만호에게 알려 줘.』

 박남철 전사는 오침시간을 이용해 쉬고 있는 리상혁 전사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리상혁 전사는 눈이 똥그래진 표정으로 박남철 전사의 사업 수완을 부러워했다.

 『아, 밤이 기다려지는 구나….』

 리상혁 전사는 오늘밤은 고기에다 멍멍이(술)까지 곁들인 황홀한 밤이 되겠다며 낮에 잠시라도 잠을 자두라고 했다. 박남철 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 낮잠을 잘 자리를 찾았다.

 오후 전투가 끝나고 밤이 깊어지면 또 관리소 뒤 야산으로 올라가 어제 묻어둔 돼지고기를 파내 삶아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잠깐 쉬다가 일어났는데도 몸마저 가뿐한 것 같았다.

 그 동안 밉게 보인 작업반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박남철 전사는 오후 내내 열심히 모를 꽂았다. 허리가 말린 명태처럼 딱딱해져 더 이상 엎드려서 하는 일은 못하겠으니 제발 못춤이나 나르며 서서 하는 일을 좀 시켜 달라. 논둑 쪽에는 생땅처럼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으니까 다시 쓰레질을 좀 해 달라. 골무가 떨어져 맨손으로 모를 꽂았더니 손톱이 다 닳아 손끝이 퉁퉁 부어 있다. 이렇게 부어 오른 손가락으로도 할당량을 마쳐야만 공수표가 나오는가? 이러면서 다른 날은 작업반장 속도 어지간히 썩였는데 어제 오후에는 군말 없이 일했다. 그러다 밭머리총화(하루 일한 작업량을 결산하는 시간) 때 작업반장 곁으로 다가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군중문화오락회 끝나고 개인 자유시간 때 농기계관리소 옆에서 좀 만나자고.

 작업반장은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물건을 하나 전해 줄 것이 있다고 했다. 눈치 빠른 작업반장은 박남철 전사의 작업량을 형식적으로 물어 본 뒤 20%나 초과 달성한 1.2공수짜리 노력공수표를 끊어주었다.

 저녁밥을 먹으러 마을로 돌아오며 박남철 전사는 혼자 웃었다. 공화국 사회는 이제 썩을 대로 썩어 농촌에서도 뇌물만 고이면 빈둥빈둥 놀아도 열심히 일한 것처럼 초과 달성한 노력공수표가 나오는 사회라고. 그런데도 세상 돌아가는 형편도 모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죽을 줄 모르고 일하는 고등중학교 4∼5학년생들이 웬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무원에서 나온 사무원들이나 안전원들은 물물교환 할 물품들을 농촌으로 가지고 들어와 개나 돼지를 잡아 저녁마다 술이나 마시다 돌아가고, 모내기전투를 도맡아 앞장서 끌어나가야 할 협동농장관리위원회 일꾼들은 일은 뒷전으로 미루어 놓은 채 개인주의에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