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게 흡입시켜 똘똘거리는 소리를 잠재우는데 필요해.』

 김만호전사가 어둠속에서 눈동자를 빤짝거리며 말했다. 리상혁 전사가 이해가 안된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물었다.

 『하나면 돼?』

 『기럼. 돼지새끼는 숨쉴 때 한번만 들이키게 하면 그만 눈동자가 풀리면서 똘똘거리는 소리도 안 내.』

 『그 민한 짐승이 가스에는 예민하구나. 옛다, 라이터.』

 리상혁 전사가 윗도리 주머니에서 가스라이터를 꺼내 주었다. 김만호 전사는 라이터를 받아 넣으며 낮에 보아두었던 우당리 5반 농장원 집으로 향했다. 박남철 전사와 리상혁 전사는 앞서가는 김만호 전사의 뒤를 따라 갔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두어 차례 들려왔고, 모내기가 끝난 논벌에서 개구리 울음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들려왔다. 초생달이 삐딱하게 걸려 있는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차가운 별빛을 받으며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야.』

 어둠에 잠긴 골목길을 더듬으며 한참 걸어가던 김만호 전사가 박남철 전사와 리상혁 전사를 뒤돌아보며 속삭였다. 리상혁 전사는 바깥에서 집 주변을 살피면서 망을 보고 있을 테니까 빨리 안으로 들어가 돼지를 목매달아 나오라고 했다. 김만호 전사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서 사람이 다가온다든지 생각지 못한 돌발 사태가 들이닥치면 돼지우리 쪽으로 돌을 던지며 신호나 한번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박남철 전사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변소 쪽으로 기어가 몸을 숨긴 채 두 사람은 집안의 동정을 살폈다. 주인은 깊은 잠이 들었는지 드르렁 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왔다. 김만호 전사는 변소간에 쪼그려 앉은 채로 가스라이터를 켜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각이었다. 저녁상을 물리면 금방 잠자리에 드는 농장원들로서는 깊이 잠들고도 남을 시각이었다. 김만호 전사는 집안에 개가 없다는 것, 바깥주인은 깊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곁에 있는 박남철 전사를 툭 쳤다. 그가 먼저 돼지우리로 들어가 돼지의 콧잔등을 슬슬 긁어주며 가스를 흡입시킬 테니까 배낭 안에 넣어온 올가미를 꺼내 들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박남철 전사는 두려움에 들뜬 얼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만호 전사는 박남철 전사가 배낭 속의 올가미와 마대자루를 꺼내는 것을 보고 먼저 돼지우리로 들어갔다.

 돼지우리 안쪽에 삐딱하게 누워 있던 돼지가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왔다. 까만 중돼지는 우리 안에 사람이 들어온 것을 감지한 것 같았다. 놈은 단잠을 깨운 두 사람에게 똥 세례를 퍼붓듯 순간적으로 몸을 털며 표피에 묻은 물똥과 오물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