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상숙 돌체소극장 대표
 언제 칠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다 벗겨진 페인트칠 아래 덩그러니 걸린 간판 하나.
 없는 문을 따라 들어가면 퀘퀘한 곰팡이 냄새와 바닥에 고인 물, 쓰러질듯한 기둥 사이로 흔들리는 백열전구 뿐이었다. 무대와 객석이 사라진 한 귀퉁이에 쌓여있는 소품들과 조명기구만이 이 곳이 80년대를 풍미하던 ‘돌체소극장’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인천에 두 곳 뿐인 소극장 중 하나로, 20여년 동안 ‘경동’을 지켜온 인천연극사의 산증인이라하기엔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다.
 돌체소극장은 지난 1979년 기독병원 앞 얼음창고 자리에 개관했다. 이 후 지금의 박상숙(45·사진)씨가 소극장을 인수해 1983년 연극전용 소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이때부터 경동 일대엔 잇따라 소극장이 들어섰고, 자연스럽게 경동 일대는 인천연극의 산실로 자리잡았다. 84년 현재 인천시립극단 감독인 정진씨가 ‘경동 예술극장’의 문을 열었고, 이어 87년 김종원씨가 ‘미추홀 소극장’을, 권용성씨가 ‘신포아트홀’을 개관했다. 88년 ‘경동 예술극장’이 문을 닫던 해 이원석씨가 ‘배다리 예술극장’을 세웠다.
 “마치 전쟁을 치르는 듯, 소극장들 간에 창작경쟁이 치열했다. 다양한 종류의 연극무대가 관객을 맞이했고, 관객들은 모임까지 결성해 가면서 연극을 찾았다. 연말이면 좋은 공연을 한 소극장에서 배우들과 관객이 만난 시간도 잦았다”
 그러나 인천연극의 르네상스 시대는 짧았다. 90년 시립극단 창단과 함께 소극장들은 잇따라 문을 닫았다. 가장 큰 이유는 경영난과 관객부족.
 “창작활동이 시들해졌고, 장기공연물 또한 줄었다. 시대흐름을 놓치다 보니 관객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배우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 또한 실패했고 인력 부족현상까지 겹쳤다.”
 유일하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이 돌체소극장. 박상숙 대표는 문화행정의 부재 또한 지금의 인천연극을 위축시킨 큰 이유라고 설명한다.
 “필요할 때면 거금을 들여 부르다가도 이후엔 ‘언제 봤냐’는 식으로 등돌리기 일쑤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등 관(官)이 운영하는 공연시설의 대관 문제도 그렇다. 민간극단은 시산하단체와 민예총·예총, 돈벌이가 되는 이벤트 행사 이후 4번째 순위로 배정된다. 공연하고 싶어도 할 무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박 대표는 언제부터인가 정부의 문예기금에 길들여진 극단들도 인천연극의 큰 문제로 지적한다. “인내심을 갖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작품철학을 만들어 간다던가, 생존 능력을 키우는데는 소홀한 채 문예기금에만 의존하는 게 극단의 현실이다.”
 결국 인천연극에는 공연을 올릴 무대도, 희곡도, 관객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유일하게 인천에서 20여년간 관객과 함께 해 온 돌체소극장 또한 폐관위기에 놓였다. 지난 4월 재개관을 위한 내부수리 도중, 행정절차와 건물주와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가끔 기독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간판을 보고 들어와 ‘아직도 돌체가 그대로 있네’라는 반응을 보일 때가 가장 아쉽다”고 말하는 박대표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돌체’와 ‘가온누리’ 뿐인 인천에 새롭게 소극장이 들어서는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않았다. <김주희기자> kimjuhee@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