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 공식경쟁작에 진출한 ‘올드 보이’의 상영이 있던 지난 14일 오후(현지시각) ‘팔레 드 페스티발’ 건물의 ‘드뷔시’ 극장 앞. 이날 상영 시작은 오후 7시부터였지만 오후 6시부터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이 ‘크로와젯’거리에 긴 띠를 이뤘다. 관객들은 제57회 칸 국제영화제를 취재하려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4천여명의 기자들이 대부분이다. 마침내 오후 7시, 긴장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가 시작되자 조직위만큼이나 까다로운 칸 관객들은 중간중간 탄성과 웃음을 터뜨렸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박수로 화답했다.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간에 나가버리기 일쑤인 ‘까다로운’ 관객들로서는 호의적인 태도였다.
 언론들의 관심은 15일 낮 12시30분 있은 기자회견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방송·통신·신문 등 100여명의 기자들이 회견장을 찾은 가운데 진행된 회견에서 기자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세계에서부터 한국영화산업 전반에 관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퍼부었다.
 “이번 공식 경쟁작에는 올드보이를 비롯해 트로이, 킬빌2 등 복수에 관한 내용이 많은데 당신은 왜 복수극을 선택했나, 또 타란티노는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
 한 여기자의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그리스신화에서부터 현대영화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즐겨 다루는 소재이므로 별로 특별하지 않다”며 “현대 사회는 사적인 앙갚음을 금지하고 있고, 금지된 것에 대한 시도는 예술가의 특권”이라고 답했다. 박 감독은 또 “킬빌1은 올드보이와 함께 개봉하는 바람에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말해 기자들의 웃음을 유도한 뒤 “쿠엔틴은 한국의 젊은 영화인지망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 감독 영화에는 폭력이 많이 등장하면서도 복잡한 심리를 담고 있는데 폭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란 질문이 날아들었다.
 박 감독은 “폭력은 영화에서 볼거리다. 몸의 움직임을 통해 활력적 쾌감을 얻을 수 있지만 폭력을 유희적 느낌으로 바라보거나 아름답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나는 폭력이 왜 어떻게 사용되며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을 드러냈다.
 한국영화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표시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한국영화산업에 대해서는 특히 제작자, 배우 등 팀 구성원 모두가 한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박 감독은 “(대중성이 떨어져도)예술적으로 우수한 작품이 대중에게 외면을 안당한다”며 “이는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한국과 프랑스 영화산업이 비슷하게 가고 있음을 암시했다.
 배우 최민식은 “창작의 필수는 자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자유를 구속받던 시절을 겪어야 했으며 90년대 중반부터 비로소 창작의 자유를 인정받았다”며 “봄에 얼음을 깨고 나오는 개구리들처럼 지금 한국에서는 우울한 시기 잠재했던 인재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말로 한국영화계의 비약적인 발전을 설명했다.
 그는 한편, “어떤 영화를 주로 찍느냐”는 다른 기자의 질문에 “영화를 찍은 뒤 내 이미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흥미가 느껴지는 작품이면 무조건 바로 들어간다”며 인기와 이미지 관리에 연연하지 않는 연기파 배우임을 강조했다.
 배우 강혜정은 “한국 영화와 더불어 관객들의 안목도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영화산업이 발전하고 있다”고 진단했고, 유지태는 “한국 영화가 앞으로 메이저급 영화와 함께 B급 영화, 독립영화 배급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세계에 확산되길 바란다”며 희망을 피력했다.
 이밖에 영화음악, 촬영기법, 원작 만화, 영화에 영향을 준 감독 등에 대한 다채로운 질문이 제작진을 향해 쏟아졌고 제작팀은 차분하고 여유있는 대답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이어갔다.
 예정시간 1시간을 넘겼는데도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사회자가 이를 중단했고 기자들은 오후 1시40분쯤 회견장을 떠났다.
 심사위원장 쿠엔틴 타란티노는 한편, 최근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박찬욱이 칸에 올 때가 됐다”며 “박찬욱은 그 곳의 가장 흥미로운 액션 영화 감독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올드보이에 대해 지금까지 아홉 명에게 얘기를 들었지만 상업적이라기 보다 터프한 영화라고 들었다”고 강조하는 등 한국 영화에 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타란티노는 처음 비경쟁작으로 초청됐던 ‘올드보이’를 경쟁작으로 바꾸어 놓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16일 오후 5시와 7시30분 두 차례 있었으며, 17일 낮 12시30분 기자회견을 갖는다. 홍 감독의 영화는 예술성을 중시하는 유럽인들의 구미에 맞는 작품이어서 ‘여자는…’ 역시 수상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주목할만한 시선에 ‘청풍명월’(김의석), 시네파운데이션에 ‘날개’(서해영), 감독주간에 ‘웃음을 참으며’(김윤성)가 잇따라 상영될 예정이어서 한국 작품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프랑스 칸=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

사진설명>영화 ‘올드보이’ 팀들.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