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47)

 『이건 보위부 비통(비밀통신)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요사이 국경지대 장마당에서는 남반부 대중가수들 히트곡 테프(테이프)가 공화국 젊은 아이들한테 전달되는 거점이 되고 있다는 말이 있소. 뿐만 아니라 련놈이 붙어서 핥고 빠는 부화질(섹스) 필림까지 장마당을 통해 고위 간부들 안방까지 사바사바(공급) 되고 있다는 소리도 있소. 여기는 기런 기미가 없소?』

 문중위가 정색을 하고 묻자 안전원은 난감한 빛을 보였다. 그도 그런 소리는 여러 차례 들었다고 대답해야 좋을지, 직접 목격하지 않아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잠시 말머리를 돌리듯 새금천장마당 서편 가설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정 아바이를 끌어당겼다.

 『이보오, 정 아바이. 저기 저사람이 강영실 동무 아니오?』

 안전원이 갑자기 정 아바이를 붙잡고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자 문중위는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정무원(내각)의 지시로 군 단위마다 두어 군데씩 설치되어 있는 장마당이 국영상점과 협동단체 상업망이 해결하지 못하는 공화국의 물자부족현상과 생활필수품 부족에서 야기되는 인민들의 불평불만을 해소하는 데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 반면 엄청난 행정력을 투입해 자리 잡아 놓은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무너뜨리며 도덕적 타락을 불러오는 온상이 되고 있다는 확답을 들으려는 순간 안내를 맡은 안전원이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며 말머리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안전원과 정 아바이의 거동을 살피며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안전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던 정 아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옆에 있는 사람은 성복순 동무고.』

 정 아바이가 성복순 동무 이야기룰 꺼내며 갑자기 긴장하는 빛을 보였다. 문중위는 덩달아 표정이 굳어졌다. 박중위와 함께 몇 며칠을 찾아 헤매던 성복순 용의자가 새금천장마당 가설건물 4호 매대 옆에 앉아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정 아바이와 안전원이 가리키는 4호 매대 쪽을 지켜보았다. 큰 함지박에다 두부를 담아놓고 파는 강영실 동무 옆에 붙어 앉아 성복순 용의자는 묵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문중위는 저 에미나이들을 어떻게 체포할까 하고 상의하듯 뒤따르던 박중위를 끌어당겼다.

 『이보라, 박중위! 저 에미나이가 성복순이래…. 어드렇게 해야 좋은가?』

 박중위도 성복순 용의자가 눈앞에 있다는 소리에 긴장하는 빛을 보이며 말없이 문중위가 가리키는 손끝을 주시했다. 젊은 에미나이가 묵을 담은 함지박 하나를 놓고 앉아 있었다. 인민복 바지 차림에다 붉은 개털 스웨타를 입고 있었다. 그니는 곁에 앉은 강영실 동무를 향해 뭐라고 속삭이다 지나가는 아낙들을 바라보며 묵 사라고 헤실헤실 웃어대기도 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볼우물이 폭 파이는 얼굴이 퍽 고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