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14) 잠시 후 두 사람은 백량리로 달려갔다. 금천군 애육원(고아원)에서 교양원으로 일하고 있는 엄복순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애육원은 혼전ㆍ혼외 성관계에서 태어난 사생아나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만 5세 미만의 고아들을 국가가 맡아 키우는 보육교양기관이었다. 애육원 교양원 밑에서 4세까지 자란 사생아나 고아들은 각 도마다 1개소씩 설립되어 있는 육아원이나 계모학교로 넘어가 17세까지 의무교육을 받았다. 그리고는 사회에 진출해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

 문중위는 애육원 앞을 자나갈 때마다 몇년 전에 읽은 노동신문의 대담기사가 떠올랐다. 그 대담기사에는 1981년 8월 월북한 남조선 석정현 육군 대위가 소좌로 승진되어 인민군에 편입된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석소좌는 그 대담에서 남조선 고아원 원장들은 세상에 태어난지 몇개월 되지도 않은 어린 생명들을 말도 통하지 않고 피부 색깔도 다른 외국사람들에게 입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조선 민족이 낳아놓은 어린생명을 어떻게 다른나라 사람들에게 키워 달라고 넘겨주는지 문중위는 그 기사만 생각하면 공연히 민족적인 자존심이 짓뭉개지는 것같아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만약 말이야, 우리 공화국 군대가 조국해방전쟁(6ㆍ25) 시기처럼 서울을 점령한다면 박중위는 무슨 일부터 먼저 하고 싶네?』

 룡성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신강리 쪽으로 지프를 몰던 박중위가 씨익 웃었다. 문중위의 질문이 퍽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전방을 바라보며 운전대를 돌려대다 월남자들에 대한 평소의 궁금증을 드러냈다.

 조국을 배반하고 남조선으로 넘어간 배신자들이 진짜 삐라에 찍혀 있는 것처럼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보구싶어….』

 지프는 신강리 장지산 밑으로 난 간선도로를 따라 동북 방향으로 나아갔다. 인삼밭 지대가 끝나자 모내기전투가 한창인 벌방지대가 나오면서 토산군으로 넘어가는 군사작전도로가 나왔다. 지프가 군사작전도로 위로 올라서자 문중위가 자기 생각을 내보였다.

 『나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고아들을 해외에 입양시키고 있는 남조선 보건사회부 장관 놈과 고아원 원장 놈들을 불러모아 모조리 총살시켜버리고 싶어. 망종의 새끼들, 고성기 방송에다 대고 맨날 남조선이 북조선보다 몇 배 잘 살고 있다고 떠들어대면서 어드렇게 고아들을 해외에다 입양시키고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니까니….』

 모내기전투가 한창인 백양리 벌방지대를 바라보며 박중위가 거들었다.

 『우리 조선 민족의 자존심은 그놈들이 다 짓뭉개고 있다고 봐야디….』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어린 고아들은 당연히 국가나 사회의 부담으로 키워야디 어드렇게 남조선 아새끼들은 기따우 생각을 다할 수 있었을까?』

 문중위는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지 담배를 한 대 붙여 물며 창유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