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23)

 지배인이 옆에 선 부기원에게 눈짓을 보내며 정복순 동무를 불러오라고 했다. 잠시 후 머리를 단정하게 빗질한 정복순 동무가 지배인실 문을 열며 고개를 내밀었다.

 『누가 찾아왔다구 기러던데…?』

 『동무, 어서 들어 오라.』

 지배인이 정복순 동무를 불러들여 인사를 시켰다. 문중위와 박중위는 재빨리 정복순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파마 약품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는 것으로 보아 직업이 미용원인 것이 틀림없었다.

 문중위는 공민증에 기록된 개인자료를 확인한뒤 곽인구의 사진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어떤 관계냐고 몰아붙였다. 정복순 미용원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도리질을 해댔다.

 『군관 동지, 저는 이런 사람 알지 못합네다. 한번도 만나본 일도 없는 모르는 사람입네다. 내가 이런 사람들 하구 아는 사이라고 누가 그럽데까?』

 문중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관장의 사진을 꺼냈다.

 『기럼 이 사관장 동무하고는 어드런 사입네까?』

 『어드런 사이라뇨. 이 사람도 전혀 모르는 사람입네다.』

 정복순 미용원은 너무 엉뚱한 질문이라 무슨 대답을 못하겠다며 불안해 했다. 박중위는 당황하는 정복순 미용원을 바라보다 문중위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또 허탕이야. 애매한 사람 욕보이지 말고 오늘은 이만 끝내자우.

 문중위도 도리 없는 듯 탁자 위에 놓인 사이다를 한 모금 삼키며 사관장과 곽인구의 사진을 챙겨 넣었다.

 『출출하지? 어디 가서 저녁밥이나 먹자우.』

 박중위가 배고픈 모습을 보이며 편의봉사관리소 청량음료판매대 쪽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문중위는 박중위를 뒤따라가며 하늘을 쳐다봤다. 봄날의 긴긴 해가 그새 기울고 있었고, 청량음료판매대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민들도 보이지 않았다. 지프를 세워 놓은 편의봉사관리소 앞은 해거름의 긴 그림자가 깔리면서부터 썰렁한 강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박중위는 로동자구 협동식당이 있는 례성강 나루터 쪽으로 지프를 몰았다. 로동자구에 기거하는 가내부업여성들이 노동력과 시설을 투자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식당에서는 인근 례성강에서 잡히는 물고기와 사민부락에서 밀도살되는 각종 짐승들의 육고기, 그리고 아낙들이 은밀하게 담가 파는 밀주를 밀반입해 중국 국경지대처럼 자본주의식 장사를 했다. 그러면서 인근 군부대의 부대장들이나 당기관의 고급간부들까지 초빙해 기름진 음식과 여자까지 뇌물로 고이며 자신들의 자본주의식 장사행위를 눈감아 달라고 부탁했다. 언젠가 사단 보위부 참모장을 모시고 이곳에 왔다가 융숭한 대접을 받은 박중위는 그 뒤 공무출장을 나오면 꼭 이쪽으로 와서 밥을 사먹으며 쉬었다 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