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전투(29) 15일 동안 개나 두어 마리 잡아 술추렴이나 하다 복귀하겠다고 기대를 걸고 왔다가 서로 찢어지라고 하니까 간부들은 불만들이 가득했으나 농장 측에서 나온 노간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서로 편하게 살자는 이야기라 백창도 과장도 수락하고 말았다. 노소 노동력을 균형감 있게 안배해 나이 먹은 간부들에게는 하루 일이 시작되는 아침나절과 일과가 끝나는 저녁나절에만 힘을 내어 열성적으로 모내기전투를 하는 시늉만 내게 하고, 실제 눈에 드러나는 분조별 할당량은 힘이 좋은 떠꺼머리 총각들에게 마치게 하라는 농장 측의 배려를 미련스럽게 배척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저 늙은 여우들이 뭘 기대하고 그런 선심을 베풀까요?』

 사로청위원장은 농장관리위원회 측의 배려가 은근히 부담스럽다는 투로 물었다. 그러나 백창도 과장은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사회주의 공동생산현장에서는 언제나 첫삽과 마지막 삽을 힘차게 뜨면서 일 자체보다는 선전선동을 잘하는 노동자 농민들이 고위간부들의 눈에 들게되고 출세도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기거이 말이나 됩네까? 놀 때는 놀더라도 함께 달라붙어 화다닥 해치우는 돌격정신이 있어야디, 첫삽과 마지막 삽만 힘차게 뜨며 종일 열성적으로 일한 척만 하면 그 후과(결과)가 어케 됩네까?』

 『공화국에 사로청위원장 같은 간부들만 있었으면 벌써 북남간 통일도 이룩했을 기야. 허나 불행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간부들을 키우지 못하고 죄다 출당 척직해 버렸어…. 앞으로 그같은 사회적 후과를 어케 다 감당해야 좋을지는 나도 모르갓서. 기러니까니 앞으로는 기따우 질문은 하지 말라우.』

 백창도 과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당 기관과 행정기관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병폐에 대해서는 자신도 개선할 방책이 없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주는 떡이니까니 받아는 먹지만 내래 사실 기분이 좀 찝찝합네다.』

 사로청위원장은 담배를 피워 물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옛날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 지역 벌방지대가 개인농으로 경작될 때는 입쌀이 전체 주민이 먹고 남을 만큼 소출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협동농장으로 변하고부터는 소출이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몇 년째 농촌노력지원을 나와 보니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농장원들에겐 도무지 주인의식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열심히 일해서 농촌을 부강하게 만들어보려는 자립의지와 개척정신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들이 일하고 있는 협동농장이 나의 것, 우리들의 것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텃밭 가꾸듯이 농사를 지으면 소출이 금방 눈에 띄게 늘어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