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라 마흐말바프?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제56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경쟁작’ 가운데 ‘오후의 5시’ 감독 이름을 본 사람들은 잠깐동안 고개를 갸웃거리기 일쑤다.
1980년 이란에서 태어난 여자감독인 사미라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더불어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딸이다. 사미라가 내놓은 ‘오후의 5시’는 탈레반정권 붕괴 뒤 한 처녀의 일상을 통해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폭풍우가 핥고 간 뒤의 잔잔해진 바닷가 물결이 ‘찰랑거리듯이’ 얘기한다.
이 영화가 ‘끌로드 드뷔시’ 극장에서 처음 상영됐을 때 관객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사미라의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 연출력을 높이 사서만은 아니었다. 사미라의 신작은 비참한 일상을 서정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데다 인간성, 여유, 유머마저 엿보인다.
“잘 모르겠어요.”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사미라는 영화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한 감독이 아니라 때론 수줍어 하고, 때론 까르르 웃어넘기는 앳된 23세의 여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1980년 테헤란 출생인 사미라는 8살 때 아버지의 작품 ‘싸이클리스트’에서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18살 때 장편 극영화 ‘사과’를 만들어 이듬해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됐으며 두번 째 작품 ‘칠판’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바 있고 보면, 이번 그의 경쟁작 진출은 행운이나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참혹한 현실을 찍으면서도 거기에 서정적인 인간애를 집어넣은 영화를 젊은 여자감독이 찍어냈다는 게 놀랍다”며 “이란 감독이 이웃 나라에 가서 영화에 담아내는 인류애적 예술가 정신도 호감가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개막작 ‘팡팡 라 튤립’을 비롯해 프랑스 영화가 대거 주류를 형성한 올해 칸 영화제에서도 ‘오후의 5시’같은 아시아 영화가 고군분투한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일이다.
‘오아시스’ ‘상록수’ 등 칸에 초청된 두 편의 장편과 ‘사연’ ‘굿나이트’ ‘원더풀 데이’ 등 우리나라 영화는 공식부문이 아니라 비공식 감독주간, 비평가주간에 끼인 터여서 더욱 그럴 것이다.
사미라의 영화와 함께 아시아 영화로는 우선 ‘수자꾸’로 황금 카메라상을 받았던 ‘나오미 가와세’의 신작 ‘사라소주’와 경력에 비해 비교적 늦은 감이 있어 보이는 ‘구로사와 키요시’의 ‘밝은 미래’가 눈에 띈다. 중국 독립영화의 감독인 ‘수쥬’의 ‘로우 예’가 ‘자주빛 나비’로 칸에 합류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영국 영화는 한 작품도 오르지 못했으며 미국과 유럽의 경우도 새로운 감독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칸과 인연이 깊은 감독들의 영화로 채워져 있다. 그는 ‘버드’ 등을 비롯해 올해를 포함, 세번째 칸을 방문했다.
56회 칸영화제는 ‘집안잔치’로 보일 정도로 프랑스 영화가 대거 포진해 있는게 특징이다. ‘질 자콥’ 조직위원장과 더불어 칸을 이끌어 가는 ‘티에리 프리모’ 집행위원장은 “올해 칸에서 선보일 프랑스 영화의 수준은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기염을 토했지만 예년에 비해 균형이 떨어지고 ‘덩치만 큰 어린이’ 같다는 지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는 ‘테오 앙겔로풀로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왕 자웨이’ 등 주목을 끌 만한 감독의 신작이 아직 미완성인 상태여서 칸에 오지 못한 가운데 그 틈새를 대거 프랑스 영화가 파고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쟁작 목록에는 ‘앙드레 테시네’ ‘베르트랑 블리에’ ‘클로드 밀러’ 칠레 출신의 ‘라울 루이스’ 등의 노장 감독과 함께 ‘프랑소와 오종’ ‘베르트랑 보넬로’ 등 젊은 감독의 영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포르노그라퍼’란 영화로 비평가 주간에서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는 ‘보넬로’의 신작 ‘티레시아’는 올해 칸의 ‘와일드 카드’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프랑스 영화의 의도적인(?) 약진과 함께 ‘라스 폰 트리에’ ‘알렉산더 소쿠로프’ ‘피터 그리너웨이’ 등 칸 단골 손님들의 신작이 들어 있지만 무게는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니콜 키드만’이 주연한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은 덴마크에서 기술 시사 직후 냉소적 평가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어 과연 실체가 어떨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와 함께 형식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소쿠로프’와 ‘그리너웨이’는 그들의 성향이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관객들을 향해 고고한 메시지만을 전달한 뒤 점잖게 돌아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84분짜리 신작을 들고 온 ‘구스 반 산트’는 어쩌면 그의 출발점이었던 독립 영화의 기운을 되찾았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걸게 하기도 한다.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를 두고 영화관계자들은 그와 한동안 소원했던 칸에서 작정하고 모셔왔을 거라고 수군거리는 상황이다.
‘빈센트 갈로’의 신작 ‘브라운 버니’는 “훌륭한 오럴 섹스 장면이 들어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지난해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이 불러 일으켰던 해프닝을 칸에서 재현할 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나온다.
‘드니 아르캉’ ‘헥토르 바벤코’ ‘푸피 아바티’ 등의 경쟁작 감독의 목록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감독의 작품보다는 거장의 그것을 존중하는 칸의 전통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뤼미에드’ ‘끌로드 드뷔시’ ‘살리 바젱’ ‘살리 브뉘엘’ 등 영화가 상영되는 4개관을 안고 있는 ‘팔레 등 페스티벌’ 건물은 분주한 발걸음으로 드나드는 영화인들의 웅성거림으로 ‘예감이 가득한 숲 그늘’처럼 보인다. <프랑스 칸=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