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 (3) 어떤 상황이 와도 사단 보위부가 상급참모부를 상대로 대결 자세를 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자폭탄을 안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행위와 같았고,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3대혁명 소조원들은 중앙당 비서(김일성을 의미함)의 2ㆍ13(1973년) 지시에 의거, 당내 노간부들의 관료주의와 부정ㆍ비리는 물론 국가 정치보위부원들의 권력남용과 원칙 없는 인민유린행위를 색출하여 처벌하기 위해 당중앙이 공화국 내의 경제부서와 각급 학교, 그리고 행정기관과 연대급 군부대까지 파견시켜 놓은 친위대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조원들은 제6차 당대회(1980년 10월10일) 때 당중앙이 수령 동지의 공식 후계자로 등장하기까지 이면에서 충성을 다해온 신세대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은 제5차 당대회(1970년 11월) 때 제기된 기술ㆍ문화ㆍ사상 부문의 3대 혁명을 부르짖으며 당의 노쇠화와 침체화, 그리고 간부들의 관료주의적 작풍과 부정 비리들을 색출해 출당 철직 시킨 뒤 그 자리에 당중앙을 떠받치는 신세대들을 투입시켜 지도자 동지의 정치적 기반을 넓혀 온 공신들이었다. 이들이 제1의 전위조직이라면, 이들보다 3개월 늦게 출범(1973년 5월)한 국가정치보위부는 3대혁명소조원들의 초당적 정풍사업(整風事業)에 반발하는 당간부들과 인민들의 반당ㆍ반체제 행위들을 색출해 독재대상구역에 수용하기 위해 창설된 제2의 전위조직이었다.

 국가정치보위부(지금은 국가안전보위부)의 주된 임무는 3대혁명소조원들이 당중앙의 정치적 기반을 넓혀 가는 밑작업을 할 때 반발하는 당 고위간부들과 인민들을 솎아내어 한번 들어가면 잘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보위부원들은 소조원들에게 대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힘이 있다고 국가권력체계의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설치다가는 정치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소조원들에게는 총도 없고 칼도 없지만 장차 수령의 영도 권력을 승계받아 공화국을 이끌어갈 든든한 배경이 뒤를 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조원들은 늘 보위부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간섭하고 감시하며 원칙에서 벗어나는 행위들이 나타날 때는 3선보고체제를 이용해 지도자 동지에게 바로 보고해 버렸다. 그러면 지도자 동지의 판단에 따라 열성분자도 될수 있고 반혁명분자도 될수 있었다. 그런데 리상위가 보는 앞에서 욱하는 모습을 보이며 흥분했으니….

 자중해야디.

 수사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타성을 보인 신중치 못한 행위를 뉘우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직속상관인 사단 보위부장과 사단장 넝감(영감)의 지시내용이 부담스럽기는 해도 현재 위치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한 치의 의혹도 없이 화물차전복사고를 수사해 그 실체를 거짓없이 사단 보위부장에게 보고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