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전투(22) 사로청위원장은 갑자기 할말이 없어져 안해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화영은 짜증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 따졌다.

 『이 아이들은 내가 다른 데서 낳아 데리고 온 자식도 아니고 당신과 내가 같이 낳은 자식들인데, 어째 당신은 아이 한번 데리고 오는 일도 없고 기저귀 빨라고 수돗물 한번 받아주는 일도 없습네까? 당신은 도대체 이 가정을 위해 하는 일이 뭡네까?』

 『기것 때문에 화 났는 기야?』

 사로청위원장은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일로 한 방 먹은 듯 주머니를 부스럭거렸다. 그러더니 담뱃갑을 꺼내 한 대 붙여 물곤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담배연기가 독한지 순미가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고, 순석이도 찡그리며 울상을 지었다.

 『담배, 현관에 나가서 피우시라요.』

 화영은 순석이의 가슴을 토닥거려 주며 톡 쏘듯이 말했다. 사로청위원장은 이 려편네가 오늘 저녁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 하는 시선으로 화영을 바라보다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려편네의 행위가 괘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공화국 남정네 치고 집에 들어와 물 받아주고 유치원에 달려가 아이 데리고 오는 남편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남정네란 그저 직장에서 맡은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집에 들어와선 노동신문을 펼쳐들고 당 정책을 읽는다든지 TV나 보면서 휴식을 취하다 안해 속썩이지 않고 직장에 나가면 일등 남편인 것이다. 그 보다 무엇을 더 잘하라는 말인가? 그런데도 려편네가 자신의 충실성은 전혀 인정해 주지 않고 돌아버린 사람처럼 딱딱거리고 있으니까 가관치도 않은 것이다.

 그래도 순석이의 똥기저귀를 빨려고 세면장에 들어갔다가 물이 없으니까 그랬으려니 하며 사로청위원장은 안해의 애타는 마음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줄담배를 피워 대면서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려편네가 세대주의 체통을 짓뭉갠 것을 생각하면 혼이라도 내어 주고 싶지만 순석이의 똥 기저귀를 빨 수 있게 물 받는 것을 깜박한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인 것이다.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끼는 안해가 순석이 똥기저귀를 빨지 못해 밤새 괴로워하는 모습은 못 본다며 양철 바께쓰와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나왔다. 그때 화영이가 방을 나오다 이 모습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당신, 기건 와 들고 나옵네까?』

 『맨 아랫층에 내려가면 물이 나올 기야. 몇 번 길러다 줄 테니까니 순석이 똥기저귀나 빨라우.』

 『당신 해도 정말 너무 합네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타박 좀 했다구서리 이젠 물통하구 빠께쓰까지 들구 아랫층까지 내려가 나를 몹쓸 여자로 소문 낼 겁네까…?』

 화영은 그만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얼굴로 세대주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