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그대에게(27)

 상급참모가 축문을 외듯 고혼을 불러 사무치는 마음을 전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백중위 안해가 술을 한 잔 부어올린 뒤 어린 딸과 함께 고개 숙여 묵도했다. 방 안의 분위기는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상급참모가 리상위에게 술을 한 잔 올리라며 눈짓을 했다. 박중위가 얼른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아 술병을 들었고, 리상위가 술잔을 들고 꿇어앉았다. 박중위가 천천히 술병을 기울여 잔에다 술을 채웠다. 리상위가 채운 술잔을 받아 조심스럽게 상위에 갖다 올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추모하게.』

 상급참모가 문중위와 박중위를 보며 말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경남의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상급참모 안해의 눈에서도 이슬이 맺혔다. 박중위가 가슴이 복받치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 밑을 눌러대며 흐느꼈다.

 『이보라, 처남! 자네 처와 자식은 내가 힘 닿는 데까지 보살펴 줄 테니까 먼 길 편안히 떠나게. 기러구 먼 하늘나라에서도 이 땅에 남은 가족과 자네의 동무들이 늘 조국을 위해서 살고, 자네처럼 한 목숨 바쳐 어버이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보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보살펴 주게나. 기러면서 내년 이맘 때 또 만나 그간의 못다 나눈 이야기 다시 정답게 해봅세. 부디 잘 가게.』

 상급참모가 하직 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이자 백중위 안해는 액자 속에 든 백중위의 사진을 보며 또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 옆에 붙어 서서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있던 백중위의 어린 딸이 물었다.

 『오마니, 저 사람이 누구야?』

 백중위 안해는 뭐라고 대답을 못한 채 딸을 껴안으며 더욱 슬프게 흐느꼈다. 보다 못한 상급참모가 여동생을 다독거렸다.

 』아이 보는 앞에서 자꾸 기러지 말고 울음을 거두라. 네가 자꾸 기러면 처남의 영광된 죽음이 욕된다.』

 손경남은 그제서야 방안에 세대주의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울음을 참았다.

 『당신도 추모하라우.』

 상급참모가 곁에 선 안해를 보고 말했다. 상급참모의 안해가 상 앞으로 나가 고개를 숙이고 묵도했다. 안해의 고개 숙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상급참모가 뒤로 물러 서 있는 손경남을 보고 말했다.

 『상 치우라.』

 잠시 후 리상위와 문중위는 마루방으로 나오면서 제사란 것은 이렇게 지내는 것이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정말 좋은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러나 박중위는, 『남조선에선 제사를 이렇게 지내지 않던데.』하면서 혼자 고개를 갸우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