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잃은 그대에게(12) 보위지도원이 친절하게 잘 대해준다고 해서 자술서를 곧이곧대로 적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관장이 말했던 것처럼 영실 동무와 복순 동무를 만났던 일은 저승에 가서도 입을 다물어야 된다는 말이 맞는 말처럼 생각되었다. 공병대 부분대장처럼 불어라 한다고 해서 다 말해 버리면 책임을 진다고 인장까지 찍어 주어야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10년 감옥살이가 아니라 지난해 민둥산 밑에서 처형된 인근부대 분대선임하사처럼 자신도 공개총살형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위협이 닥쳐와도 영실 동무와 복순 동무를 만났던 일은 적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적어버리면 공개총살형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는 보위지도원이 베푸는 친절에 끌려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량정사업소에 갔던 날의 일정을 되돌아보며 글로 적기 시작했다.

 보위지도원은 인구가 자술서를 다 적어놓고 틀린 글자를 고칠 때 돌아왔다. 그는 인구의 등 뒤에 서서 말없이 자술서를 내려다보다 보위서기가 전화를 받으라는 말에 물러섰다. 보위지도원은 전화기를 붙잡고 예, 예, 하면서 허리를 굽씬거리다,

 『야, 곽인구. 나 급한 일이 생겨 사단에 좀 올라갔다 와야 되니까 그것 완성되면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군의소로 가서 쉬어라.』하고 보위부 사무실을 나갔다.

 위생실에 갔다 오겠다고 나간 보위서기는 인구가 자술서 수정을 다 끝마쳐도 돌아오지 않았다. 인구는 보위지도원이 시킨 대로 자술서를 보위지도원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위부 사무실을 나왔다.

 현기증이 밀려오면서 매스꺼운 느낌이 들었다.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보위부 사무실 옆에 있는 모래포대 방벽에 기대어 잠시 서 있었다. 온 천지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느낌이더니 잠시 후 해가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자술서를 쓰느라 점심도 못 먹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빨리 군의소로 건너가서 옥쌀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군의소 직일관실 쪽으로 터벅 걸어갔다. 위생병이 군의소로 들어오는 인구를 보고 물었다.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겁네까?』

 『보위부 사무실에.』

 『거기서 여태 뭐 했습네까?』

 『자술서 적어주고 왔어.』

 인구는 피로한 기색을 보이며 모자를 벗었다. 위생병은 어서 저녁밥이나 먹으러 가자면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인구는 다시 모자를 덮어쓰고 군의소 식당 쪽으로 걸어갔다.

 위생병은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파김치처럼 지쳐있는 인구의 거동을 보고 웃었다. 왜 군의관한테 곧이곧대로 대답해 그 고생을 하느냐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