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분 시인 '아기별과 할미꽃' 출판기념 … 시낭송 문학의 밤 병행

"오늘은 손녀가 1년여 만에 지구별로 소풍온 날입니다."

허정분(68·사진) 시인이 펴낸 네 번째 시집 '아기별과 할미꽃' 출판기념·시낭송 문학의 밤이 지난 25일 광주시 곤지암읍 열미리 능성 구씨 종손댁 앞마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마을주민들이 자리를 마련하고 한국작가회의 경기광주지부 너른고을문학회가 주최한 마을 축제의 자리였다.

허정분 시인은 86개월 동안 애지중지 키운 선천성 장애 손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찾아온 존재의 소중함과 상실의 아픔을 아름다운 시구에 담아냈다. 그렇게 뼈를 깎아 쓴 시 65편을 모아 한 권으로 엮은 것이 '아기별과 할미꽃'이다. 손녀가 그리워 부르던 사손곡(思孫曲)을 시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날은 문학회 회원과 마을 주민들이 지구별로 소풍 온 손녀를 진혼하고 시인을 위로하는 밤이었다.

1년 전 '아가야'를 가슴에 묻고 나서 손녀가 남긴 그림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며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시집의 절반은 손녀가 남긴 그림 40여 점이고, 나머지는 시인이 특별한 애정을 갖고 키웠던 손녀를 기억하며 써 내려간 글이다.

시인은 "이 시집이 장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뭇 사람들이 그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시인은 아직도 등에 업혀 있는 듯한 손녀가 그림에 소질이 뛰어난 천재였다고 기억한다.

'책을 펴내며'에서 "손녀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세상의 모든 풍경과 동물들과 곤충, 꽃 그리고 상상으로 꿈꾸는 모든 미래를 그림으로 그려냈다"고 한다. 이어 "아이가 이별을 알고 남겨 놓은 유작 같기만 해서 더 가슴이 아프지만 할미의 기억과 아이의 그림이 새 영혼으로 부활하길 꿈꾼 약속을 이 한 권의 시집으로 바친다"고 덧붙였다.

'너와 함께 외출 한 번 못 해본 지난날/참으로 무정한 바보 할미였다'고 자책한 시인은 '밤하늘 별을 보면 네 눈동자처럼 슬퍼서 외롭구나'라고 노래했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손녀가 하늘나라에서는 아기별로 다시 태어나 장애 없는 아이로 살았으면 한다. 이승의 아픈 기억은 잊고 친구들과 함께 맘껏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면서 훗날 천상에서 다시 만날 걸 기약했다.

강원도 홍천 출신인 허정분 시인은 조선시대 대표 청백리 능성부원군 충렬공 구치관 재상을 배출한 열미리 능성구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살고 있다. 시집 '벌열미 사람들'·'우리 집 마당은 누가 주인일까'·'울음소리가 희망이다'와 산문집 '왜 불러'를 펴냈으며, 한국작가회의 너른고을문학회 회원이다.

/글·사진 광주=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