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그대에게 (2) 인구는 누운 채로 남반부 에미나이의 목소리에 귀를 모았다.

 『인민군 여러분! 풀벌레 울음소리 처량하게 울려 퍼지는 전연의 잠복초소에 엎드려 오늘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계십니까?』

 속삭이는 듯한 에미나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문득 월암리 숲 속에서 영실 동무와 함께 생긋이 웃으면서 주먹밥 보따리를 전해주던 복순 동무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도고산 밑을 지나올 때 꼬투리가 성을 내어 애를 먹었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그러다 차의 한쪽이 기우뚱하면서 어디론가 한없이 굴러가던 순간의 기억이 가슴을 치는 것 같았다.

 맞다! 좌측 앞바퀴가 터지면서 차가 산밑으로 굴렀어. 그때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쳤는데 사관장 동지는 어케 되었을까?

 인구는 화물차 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날렸던 순간을 떠올리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귓속으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차가 산기슭으로 굴러가는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던 것이다.

 그 이후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대관절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기에 자신은 군의소 구급실 병상에 누워 있고, 곁에 있어야 할 사관장은 보이지 않는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인구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달빛이 들어오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창 옆에 서서 한참 바깥을 바라보니까 자신이 대대 군의소 구급실에 누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운수중대 막사는 자신이 서있는 군의소에서 200여 미터쯤 남쪽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운수중대 병실(내무반)은 대대 보위부 지도원 사무실을 돌아 무기고 쪽으로 50여 미터쯤 걸어가면 배차실과 함께 붙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밤 군의소 직일군관은 누굴까?

 인구는 사관장의 소식이 궁금해 나들문 쪽으로 걸어나왔다. 현관으로 나오니까 검붉은 전구가 불을 밝히고 있었고, 위생병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구는 구급실 옆에 있는 위생실(화장실)로 들어가 소변을 보면서 자신이 환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어디 다친 데도 없는데 왜 환자복을 입혀 놓았을까?

 기억을 짜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군복 윗주머니에, 운수중대 직일관에게 제출할 화물차 통행증을 넣어두었는데 그건 누가 보관하고 있는지 그것도 몹시 궁금했다.

 줄기차게 쏟아지던 오줌줄기가 누그러지면서 저릿한 쾌감이 전신을 흔들며 지나갔다. 인구는 자신의 그것을 툭툭 털어 환자복 속으로 집어넣으며 위생실을 나왔다. 군의실 현관에는 야간 직일병이 출입자를 감시하면서 군의실을 지키는 직일자용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위생병이 엎드려 자는 모습이 보였다. 인구는 위생병을 깨우지 않을 듯 조용히 군의실 쪽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