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준 계장은 그런 인구가 어느 때는 아래위가 꽉 막힌 답답한 녀석같이 느껴져 내쫓듯이 여행이라도 떠나라고 했다. 인구는 그때마다 완강히 반대했다.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도 없는데 쓸데없이 쏘다니다 북녘에서 남파시킨 간첩이라도 만난다면 조국을 버리고 남조선으로 넘어온 배신자라는 소리나 들으면서 무성권총을 맞고 죽는 길뿐이지 않느냐 하면서 겁 많은 어린애처럼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였다.

 『그 쓸데없는 걱정말고 젊은 놈답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문화견문을 넓혀. 그렇게 겁 많은 놈이 어떻게 사선은 넘어 왔어?』

 정동준 계장은 인구의 모습이 하도 안타깝고 애처로워서 꾸짖었다. 인구는 그래도 별로 고까운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씨익 웃고 말았다.

 『하이구 형님도…철책선 넘을 때야 어디 내 정신으로 넘어온 줄 아십니까?』

 정동준 계장은 인구가 제법 서울 말 흉내를 내며 북쪽에서 경어로 쓰는 『∼네까?』 투의 종결어미를 쓰지 않는데 대해 변화를 느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며 또 꾸짖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돈 좀 아껴 쓰고 친구들한테 빌려 준 돈은 꼭꼭 받는 습관을 길러. 너 그런 식으로 돈에 무관심하게 살다가 나중 결혼해서 처자식 어떻게 먹여 살릴 거야?』

 인구는 자신의 약점을 꼬집는 정동준 계장의 꾸지람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자신도 어느 때는 그것이 체질화되지 않아 걱정이 된다면서 또 히죽이 웃었다.

 『저도 사실 무척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저쪽에 있을 때는 돈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정치적 생명에만 매달리면서 살았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이 녀석아! 친구가 어려울 때 빌려준 돈은 약속한 날짜에 받을 줄도 알아야지…친구가 딱하다고 그냥 놔두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저야 아직은 돈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 아닙니까?』

 인구는 돈 따위 이야기는 정말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는 듯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구멍가게로 달려가 4홉들이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왔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가 소주를 즐겨 마시는 것도 못 마땅해 나무랐다.

 『술 먹고 싶으면 맥주나 몇 병 사오지 왜 또 소주냐?』

 『저는 북에서도 계속 소주만 마셨어요.』

 인구는 그러면서 식당방으로 들어갔다. 정동준 계장은 냉장고 속에서 양념에 깻잎 재어놓은 밑반찬과 소주잔을 쟁반에 받쳐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인구를 바라보며 버릇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정서나 습관으로는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 마지못해 사서 마시는 술이 소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인구는 돈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맥주보다 좋은 술이 소주로 고착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