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출강하는 모 대학교 엔터테인먼트 경영 전공 석박과정 2학기 지역 연구 수업의 일환으로 이뤄진 일종의 학술 여행에 동행한 것이었다.

학술 여행답게 총 10명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일본의 유명 엔터테인먼트 관련 업체들을 몇 곳 방문했다. 그 중에는 일본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덴츠와 저명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아뮤즈 등이 있었다.

불과 6천여 명으로 총 2조 엔 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덴츠는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예의 광고 대행업을 탈피해 '토털 커뮤니케이션즈 서비스'를 지향ㆍ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과 함께 드라마나 영화 등의 공동 제작 및 투자를 전격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기존의 엔터테인먼트를 커뮤니케이션즈란 상위 개념 아래 묶어 자국 및 전 세계를 무대로 통합적 서비스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자의 브리핑을 들으며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선 것은 그 거물 회사의 매출 규모나 사업 방향 따위가 아니라 그 태도에 배어 있는 어떤 자신감이었다. 그런 자신감은 최근 들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아뮤즈 관계자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영화 종사자들을 만나면 으레 접하게 되는 '위기 타령'은 전혀 접할 수 없었다. 최근 1, 2년 새 자국 영화 시장점유율이 상승하는 등 호조를 보이고 있다더니만 그래서인 걸까.

내친 김에 2007 일본 영화 산업 결산 지표들을 찾아 봤다. 개봉 영화 총 편 수 810편 중 자국 영화는 407편에, 총 관객 수 1억6천320만으로 점유율은 47.7%였다. 스크린 수는 3천221개, 개인 당 연 평균 관람 횟수는 1.28회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210편 중 112편에, 1억5천880만으로 50.8%였으며 2천58개 3.28회였다. 인구수에서는 2.5배 이상, GDP에서는 무려 4.5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대적으로 양호하기는커녕 현저히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위기 정도가 아니라 몰락이요 파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태도에서 왜 위기의 그늘은 발견되지 않는 걸까.

아뮤즈 측 인사의 진단에 따르면, 그 직접적 요인은 무엇보다 영화 산업 전체 규모에서 무려 6-70%를 차지한다는 DVD 시장 덕분이란다. 그 덕에 일본 영화는 하도 재미없어 일본인들마저 더 이상 보지 않는다면서도, 제작ㆍ개봉 편수가 줄어들지 않고 외려 늘어난다는 것이란다. 혹 심리적 요인은 없을까?

개인적으론 그 요인이 성황 중인 DVD 요인 못잖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위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그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공격적ㆍ긍정적 접근 말이다. 어쩌면 목하 위기론에 휩싸여 있는 한국 영화계가 가장 먼저 떨쳐 버려야 할 것은 심리적 위기감일 지도 모른다. 그 굴레를 극복하지 않고서 현실에서의 위기를 타개하기 기대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올해만 해도 그렇다. 어떤 가능성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다음 주 선보이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예시하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