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이제 몇 시간 뒤면, 어느덧 진갑을 맞이하는 칸국제영화제 행 비행기 안에 몸을 싣고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이 신문 지면에 나오는 목요일 오전에는, 개막작 상영이 이미 끝나고 영화제 둘째 날로 접어들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제61회 칸영화제가 11박 12일 간의 대장정에 전격 돌입했다.

지난 23일 공식 초청작 발표 시, 포함되지 않아 더욱 큰 관심을 촉발시켰던 개막작의 영예는 <시티 오브 갓>(2002)으로 일약 브라질을 대표하는 스타 감독으로 자리를 굳힌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의 <블라인드니스>에 안겨졌다.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베스트셀러 <눈먼 자들의 도시>를, 줄리언 무어, 마크 러팔로, 대니 글로버,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을 기용해 영화화한 화제작이다. 애당초 이 영화가 칸 경쟁작 대열에 끼지 못해 말이 많았다는데, 결국 개막작으로서 경쟁 부문에까지 입성하는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브라질, 캐나다, 일본 등 다국적 자본에 다국적 출연진으로 빚어낸 <블라인드니스>는 2000년 대 들어 다시금 부상 중인 '남미 영화의 어떤 위용'을 새삼 웅변해준다. <블라인드니스>말고도 현 브라질 영화의 간판 감독인 월터 살레스(<중앙역>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와 다니엘라 토마스가 공동 감독한 <리냐 데 파세>(브라질)와, 스페인이 공동 제작으로 참여한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어리석은 여인>(아르헨티나), 그리고 한국 시네클릭 아시아가 제작에 동참한 파블로 트라페로의 <레오네라>(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총 22편의 경쟁작 가운데 무려 4편이 남미 산인 것이다.

남미 영화의 대거 초청은 최근 예술감독에서 총괄 매니저로 승진한 티에리 프리모 체제 하의 영화제 방향성에 완벽히 부응하는 결과다. 그는 그 동안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영화와 루마니아, 헝가리를 필두로 동유럽 영화 외에도, 세계 영화 지형도에서 차지하는 남미 영화의 중요성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칸영화제가 올해 유난히도 '안배'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뜻한다. "전설적인 명성을 갖춘 감독과 칸 영화제가 지원해온 감독, 그리고 미래의 거장이 될 신진 중심으로 초청했다"는 질 자콥 조직 위원장의 말마따나 작가적 안배를 포함한 지역적ㆍ세대적 안배가 2008 칸의 가장 주목할 만한 경향인 것이다.

일찍이 "올 칸 라인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2000년대 들어 급부상 중인 이스라엘(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을 위시해 싱가포르(에릭 쿠의 <마이 매직>), 필리핀(브릴란테 멘도사의 <세르비스>) 등 '영화 변방국'의 출품작들이 적잖이 경쟁작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영화의 외연이 그만큼 확장되고 있으며, 영화의 종 다양성 또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진단한 것도 그래서였다.

황금종려상은 과연 어떤 감독 어떤 영화의 품에 안길까. 8순을 바라보는 노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체인질링>)처럼 "전설적인 명성을 갖춘 감독"의 품에? 파블로 트라페로 같은 "미래의 거장이 될 신진"의 품에? 아니면 누리 빌제 체일란(<세 마리 원숭이>) 등 "칸 영화제가 지원해온 감독"의 품에? 벌써부터 칸영화제의 최종 선택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다분히 선정적이며 천박하기 짝이 없는 궁금증이라 할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