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현지 시각으로 지난 4월 23일, 칸 클래식 등 일부 섹션을 제외한 제61회 칸국제영화제(5월 14일 -25일) 공식 초청작들이 발표되었다. 안타깝게도, 총 19편-4시간에 달하는 스피븐 소더버그 감독의 <체>(Che)는 <아르헨티나인들>(The Argentine)과 <게릴라> 두 편으로 이뤄졌으나 한 편으로 간주된단다-의 경쟁 목록 안에 우리 영화는 없다. 주연 최민식에게는 <취화선>과 <올드 보이>에 이은 세 번째, 감독 전수일에겐 첫 번째 경쟁 부문 도전인 터라 남다른 기대를 품게 했던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 등 몇몇 문제작들이 칸 입성에 실패한 것이다.

경쟁작에만 한정하면, 올 칸은 2007년 하반기 이후 더욱 심화되어온 우리 영화의 '위기'를 새삼 실감케 한다. 지난 해 <밀양>과 <숨> 두 편이 경쟁에 가세했었고, 며칠 전 발표된 병행 섹션인 감독 주간과 비평가 주간에도 초청작이 부재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더욱 더 그렇다. 크고 작은 구조적 문제점들로 인해 야기된 한국 영화의 위기가 결국은 세계무대에서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시선을 여타 공식 섹션으로 돌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당장 송강호-이병헌-정우성을 앞세운 김지운 감독의 대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및 우디 앨런의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등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 영화계 스타 감독의 신작들과 나란히 비경쟁 부문에서 첫 선을 보인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에미르 쿠스트리차의 <마라도나> 등과 함께 '심야 상영'되며, 봉준호 감독이 레오 카락스, 미셸 공드리와 연출한 단편 3부작 <도쿄!>가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선보인다.

이들이 전 세계 1천792편의 후보작들 중에서 선택된 54편-이 편수는 다소 늘어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예년에 비해 경쟁작 수가 두, 세편 가량 적기 때문이다-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따라서 실망은 금물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전통 영화 강대국이 아닌 마당에, 매년 경쟁 작을 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수상은 더 말할 나위 없고.

그뿐이 아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박재옥 감독의 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스톱>이 학생들의 연출작을 대상으로 경연을 벌이는 시네파운데이션에서, 올해로 사망 10주기를 맞이하는 (고)김기영 감독의 걸작 <하녀>가 칸 클래식에서 선보인단다. 이만하면 여전히 한국 영화의 세계적 위상을 예의 주시ㆍ추적하며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국수주의적 내셔널리즘 관점이 아니라, 범세계적 탈-국가적 시각으로.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 올 칸 라인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2000년대 들어 급부상 중인 이스라엘(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을 위시해 싱가포르(에릭 쿠의 <마이 매직>), 필리핀(브릴리언트 멘도자의 <세르비스>) 등 '영화 변방국'의 출품작들이 적잖이 경쟁작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영화의 외연이 그만큼 확장되고 있으며, 영화의 종 다양성 또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칸 행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건 그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