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인터넷 만화 원작 차태현 천진 연기 일품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소위 386세대나 그 이전의 7080세대, 그리고 더 이전 세대들이 어렸을 적에는 동네에 바보 한 명쯤이 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진짜 바보는 아니었을지언정 그들은 우리에게 바보로 기억되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놀림의 대상으로 여기며 재미를 취했지만 돌이켜 보면 세상에 바보만큼 맑고 깨끗한 존재가 없다. 어쩜 그들만큼 우리 스스로가 깨끗하고 순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위로 그들을 놀렸는지도 모른다.

극장가에 오랜만에 바보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 한 편이 소개된다.

영화 <바보> (감독 : 김정권 / 제공 : ㈜도너츠미디어 / 제작 : 와이어투와이어필름)는 인터넷 만화가 강풀의 '바보'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바보 승룡이(차태현)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토스트 가게를 하며 동생 지인이(박하선)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동생의 학교 앞 작은 토스트 가게에서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승룡이는 지인이가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다.

늘 행복하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승룡이는 매일 저녁 동네가 한 눈에 보이는 토성에 올라 '작은 별' 노래를 부르며 10년 전 유학간 짝사랑 지호(하지원)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호가 10년 만에 귀국한다. 처음엔 기억을 못하던 지호도 살며시 살아나는 추억과 함께 자신의 곁을 맴도는 승룡이의 따뜻함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늘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동생 지인이와 10년을 기다린 첫사랑 지호,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고 아끼는 든든한 배꼽친구인 상수(박휘순)가 있어 승룡이는 매일 매일이 생애 최고의 날이다.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얼굴에 장난기가 넘쳐나고 아이스러운 천진함을 간직한 차태현은 처음부터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정도로 이번 영화에서 승룡이 역할과 딱 맞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승룡이는 엄마가 적어준 낡은 종이에 적힌 토스트 레시피와 하루 일과를 적어놓은 종이를 천장에 붙여놓고 시계추 돌 듯 생활하지만 항상 행복한 바보다.

할 줄 아는 것은 토스트 밖에 없지만 동생을 위해 준비한 토스트가 식지 않게 그 위에 4개의 그릇을 덮어놓는, 첫사랑 지호가 첫 연주무대에서 까맣게 잊어버린 음악을 기억할 수 있도록 고래고래 '작은 별'을 노래하는 천진난만한 우리의 친구 바보 승룡이.

원작을 그대로 옮겨왔지만 굳이 원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100분 동안만은 순수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 28일 개봉.
 
/김도연기자 blog.itimes.co.kr/do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