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프리뷰- 밤과 낮
파리에서 펼쳐지는 홍상수식 '연애 수작'
 
2006년 <해변의 여인> 이후 2년여 만이다. 별로 특별할 것 같지 않은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한 독특한 스타일의 홍상수 감독이 또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영화 <밤과 낮>(감독 : 홍상수 / 제작 : 영화사 봄 / 제공 : KTB네트워크, 영화진흥위원회, 청어람)은 상반되면서도 서로 연결돼 있는 '밤과 낮'처럼 겉모습은 멀쩡하고 말하는 것 역시 신뢰를 주지만 속물적인 상상과 소심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한 남자의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영화는 주인공이 겪은 일상의 작은 사건들과 그의 상상 속 생각을 마치 일기를 써내려가 듯 그의 내레이션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소심한 성격의 성남(김영호)은 우연히 대마초를 피운 것 때문에 경찰에 잡혀 처벌을 받을 까봐 지레 겁먹고 파리로 도망 와 민박집에 머물게 된다.

그는 웬만한 사람하고는 팔씨름을 해도 지지 않을 만큼의 멀쩡한 허우대를 가졌지만 초청된 파티가 취소된 것에 삐지고 매일 밤 서울에 있는 아내 성인(황수정)과 국제전화를 하며 외로움에 울먹일 만큼 소심하다.

파리에서 도피 생활의 단조로움을 느낄 무렵, 성남은 유학 중인 젊은 미술학도 유정(박은혜)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예쁜 외모에 빠져든다.

한국에서 미술공부를 하며 함께 지냈던 여자 후배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성경구절을 읊으며 선을 그으면서도 누군가와의 섹스를 꿈꾸는 그는 유정을 안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여자랑은 사귀면 사귀었지 유부남과는 안 사귀는' 유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그녀의 매력에 더욱더 빠져드는 성남은 상상 속에서 그녀와의 조우를 꿈꾼다.

배우 김영호는 속물 근성에 의뭉스럽기까지 한 성남 역을 잘 소화해 냈다. 입으로는 사랑을 뱉어 내지만 어떻게든 유정의 마음을 얻어 그녀와 자고 싶은 동물적인 본능에 얽매인 소심한 남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과 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성남이란 한 남자를 통해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꿈을 꾸고, 상상하는 좀스런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감독은 밤과 낮으로 이뤄지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익숙한 이념이나 형식의 틀에 잘 잡히지 않는 삶의 요소들로 채워 넣고 싶어 했다. 그래서인지 성남의 일상 속에는 그냥 흘려버리기 쉬운 사소한 것들에 대해 시선이 집중되는 모습을 보인다.

파리 시내에 많다고 알려져 있는 개똥을 치우는 청소부의 등 뒤에서 물에 흘러내려가는 개똥을 지켜보는 성남의 모습이나, 영화 촬영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춰 섰을 때 자신의 어깨 위로 떨어진 새끼 새가 많이 다치지 않은 것에 좋아하는 것, 세느 강변 계단에 떨어져 있는 머리끈에 신경이 쓰이는 성남의 모습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장면들은 성남 스스로가 하찮은 자기 자신에 대한 위로로 보인다.

생활의 단상을 잔잔하게 담아내는 홍상수 감독 특유의 색깔은 변함이 없다.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된 유일한 국내 작품이란 점은 관심을 가질 만하다. 28일 개봉.
 
/김도연기자 blog.itimes.co.kr/do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