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살인의 추억> 이후 최고의 한국 범죄 스릴러." 오늘 선보이는 김윤석, 하정우 주연의 <추격자>를 매체 시사회에서 보고 나서, 내 미니 홈피 게시판에 올린 단평이다. 가히 최상의 평가다. 혹 평론가 특유의 과장이요 호들갑 아닐까? 나 역시 지금까지도 줄곧, 영화를 곱씹으며 자문하고 또 자문하고 있다. 내 답변은 여전히 변함없다.

<추격자>는 단적으로 '발견의 영화'다. 그 참맛을 간파·만끽하기 위해서는 보는 이로서 일말의 영화적 소양이 전제되어야겠지만,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주저 없이 "한국 스릴러 영화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살인의 추억>이 연상·비교되는 것도 무엇보다 그 때문이다.

단지 장르적으로만 두 영화가 닮은 건 아니다. 영화적 수준에서 여로 모로 봉준호의 그 걸작 스릴러에 견줄 만하다. 어느 모로는 능가한다. 스토리 구축이나 플롯을 전개시키는 극적 호흡, 주제 의식을 표현하는 방식 등에서.

끝까지 범인을 밝히지 않거나 은폐시키려고 기 쓰곤 하는 <살인의 추억>과 적잖은 그 아류작들과는 달리, 영화는 일찌감치 연쇄 살인범을 전제하고 2시간여를 달린다. 대다수의 여느 스릴러 영화들처럼 '무엇'(What)에 집착하지 않고, '어떻게'(How)에 무게중심으로 두고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다. 할리우드 걸작 범죄 스릴러 이 그랬던 것처럼. 그 놈의 스포일러 걱정타령을 할 일도 없다. 그런데도 영화는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스릴러'란 꼬리표를 떼어내더라도 영화는 '발견적 수확'으로서 그 빛이 전혀 바라질 않는다. 살인범 하정우와 추격자 김윤석, 두 캐릭터 및 주연배우의 인물해석과 연기는 압도적이다. 그 복합성·입체성은 우리 영화에서 좀처럼 목격하기 힘들었던, 영화의 빛나는 덕목이다. '발견'이란 평가가 결코 과장만은 아닌 멋진 미덕.
스릴러로서의 드라마와 액션물로서 액션을 결합시키는 비율에서도 영화는 가히 황금비율을 자랑한다. 이안 감독의 걸작 무협 멜로 <와호장룡>에 비견될 정도다. 의도 여부에 상관없이 내러티브 완급 조절이나 음악 연출 등에서 두 영화는 빼 닮았다.

뿐만 아니다. 영화는 총체적 부패·무능·무관심·무책임 등에 찌들대로 찌든 오늘 날의 대한민국 사회를 향해 통렬한 한방을 날리는데, 결코 직접적 화법을 동원하지 않는다. 생략과 절제가 돋보이는 드라마의 내적 논리를 단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놀라운 영화를 상업 영화판에선 미지의 존재나 다름없는 30대 중반의 신예 감독이 빚어냈다는 것이다. 나홍진. 이제부터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정말 오랜 만에 만나는, 기본기와 성숙함 등을 두루 겸비한 '대어급 신인'임에 틀림없다. 물론 그가 이 경이로운 장편 데뷔작에서 구현한 경지를 지속시킬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