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임순례 감독)과 <무방비 도시>(이상기)가 연속 2주 간 박스 오피스 1, 2위를 차지하면서 간만에 한국 영화가 웃고 있다. 지난 주말까지 두 영화는 전국 1백50만과 1백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단다. 아울러 그 놈의 '위기 타령'도 잠시 주춤하고 있다. 구조적 문제점 탓에 근본적으로야 별 다른 변화가 없지만 말이다.

그 기세를 몰아 아마도 설 연휴까지 상영될 성도 싶다는 두 작품의 선전이 좀 더 이어질지 여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보다 더 지속되길 바라고 내심 다음 주까진 일정 정도 흥행세가 이어지리라 보지만, 몇몇 국내외 화제작들이 흥행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이다. 황정민-전지현 '투톱'을 앞세운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정윤철)나 류승범-김사랑 등을 앞세운 <라듸오 데이즈>(하기오) 같은 국산 화제작들은 다음 주 선보이나, 당장 이번 주만도 4천만 달러가 넘는 기록적 오프닝 스코어-1월 3주 째 개봉작으로는 역대 최고란다-를 올리며 북미 지역에서 대대적 흥행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3천만 달러짜리 '저예산' 할리우드 재난 영화 <클로버필드> 등이 강력한 도전장을 던진다.

상기 두 영화의 상대적 흥행 호조가 더욱 흥미롭게 비치는 건, 새삼 '한국 영화 관객들의 어떤 성향'이 뚜렷이 읽혀져서다. 무엇보다 흥행 성적과 출연진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왔지만, 투자 현실에서는 스타 캐스팅이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곤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 네 관객들은 스타성보다는 연기력을 더 중요시하며, 내러티브ㆍ드라마 중심으로 영화를 선택ㆍ소비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계의 명실상부한 '멜로 퀸' 손예진과 <불멸의 이순신>과 <하얀 거탑> 등으로 연기자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굳힌 김명민이 결합한 <무방비 도시>를, 문소리를 필두로 김정은, 엄태웅, 김지영, 조은지 등 비교적 '소박한' 주ㆍ조연진으로 뭉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보란 듯 따돌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그 적절한 예다.

<실미도> 등의 예를 통해 입증되었듯, '실화'가 역시 약발이 먹힌다는 것도 이번에 또 다시 확인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생애...>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아깝게도 금메달을 놓쳤던 대한민국 핸드볼 여자 대표팀 이야기를 극화한 감동의 휴먼 드라마다. 연출력, 배급, 마케팅 등이 뒷받침되기만 한다면, 비흥행 감독이라는 낙인(?) 내지 꼬리표 따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드러났다.

임순례가 누군가. 가히 '단편의 발견'이라 할 <우중산책>(1994)을 위시해 주목할 만한 장편 데뷔작 <세친구>(1996), 2001 한국 영화의 자랑스러운 쾌거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으로 줄곧 최상의 비평적 성원을 받아왔으나 상업적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작가적 감독 아니던가. 그런 이가 자신과 같은 여성들, 그것도 아줌마 스토리로써 대중적으로도 멋진 안타를 날렸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런 반가움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 <우리 생애...>의 성공이 반가움을 넘어 유난히 유의미하게 다가서는 것도 실은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