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오전에 열릴 공판(공개재판〓인민재판)은 박남철 김만호 리상혁 전사의 단순한 물자절취 행위와 기타 범법행위를 단죄하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령님의 교시를 짓밟으며 공화국 사회가 금기시하는 부화방탕 행위를 한 세 청년들의 죄상을 반당·반체제 차원에서 처단해,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가 인덕정치를 펴고 있는 공화국 사회에서 두 번 다시 그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강력한 사회통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정치적인 재판이었다.

 그것은 은혜읍 광장에 인민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재판을 하라는 중앙당의 지시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낙원군 당위원회는 이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벌써 며칠 전에 담 벽에 벽보까지 내다 붙이며 공장과 기업소 노동자들까지 조직적으로 동원할 준비를 해온 것이다. 거기다 오늘 저녁에는 낙원군 내에 거주하는 일반 인민들까지 동원하라는 지시까지 내린 것이다.

 각 지역 인민반장들이 반항공훈련이 끝날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인민들을 붙잡고 『내일 오전 10시까지 은혜읍 광장으로 집결하라』는 당의 지시를 전달한 것이 바로 그 말인 것이다. 그렇찮으면 당이 인민들을 동원해 그들이 보는 앞에서 인민재판(공개재판)을 열어라 하는 결정 지시서를 내려보내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당의 결정 지시서대로 인민재판을 열고, 인민들이 보는 앞에서 당이 결정해 내려준 형량을 선고하고, 선고한 대로 형을 집행한 다음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것이다.

 「그 놈들한테 총살형을 집행하라는 지시서가 내려와 있으면 어케 하지?」

 곽병룡 상좌는 먼길 떠나기 전날 그 자식 같은 청년돌격대원들의 가슴에 총질까지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 끔찍스럽게 느껴져 몇 차례 한숨을 쉬어대다 잠자리에 눕고 말았다. 만사가 귀찮았던 것이다. 연로한 어머니에게는 죄를 짓는 심정이었지만 이대로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으면 차라리 마음은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안해는 곁에 달라붙어 계속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번에 평양에 올라가면 큰아버님이나 작은아버님한테 부탁해 제발 그런 재판 안 하는 곳으로 좀 보내 달라고 하시라요. 남반부로 넘어간 인구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당신은 그 일만은 그만 해야 합네다.』

 『기래, 알았으니까니 제발 그만하고 좀 자자우. 나도 기런 재판 한번씩하고 나면 오줌에 피가 썩여 나올 만큼 힘들어, 이 사람아.』

 곽병룡 상좌는 머리끝까지 치미는 부화를 참지 못해 족제비눈으로 안해를 쳐다봤다. 정남숙은 더럭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빌었다.

 『알았시요. 나 이제 암 말 안 할 테니까니 날래 주무시라요.』

 밤새 뒤척거리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안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일어나시라요. 모처럼 집에 온 도련님과 조반이라도 한 끼 같이 먹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