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맑시즘을 신봉하는 것 같다
<제133회>글 최인 그림 송정훈

남자의 말에 근회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난 뭐가 뭔지."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맑시즘이야."
"맑시즘이요?"
"맑시즘은 말이야, 정치적으로는 계급투쟁을 부르짖고, 경제학설로는 잉여가치설을 내세우고 있지. 그리고 변증법적 유물론의 결론으로 자본주의 붕괴를 예언했고."
"그건 그렇죠."
"그런데 맑시즘이 대단한 것은 … 계급투쟁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거야. 그리고 맑시즘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자 농민을 중심축으로 삼아서…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운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이고. 내 말은… 맑시즘이 소외받고 외면받는 대중을 역사의 중심에 세웠다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그리고 그런 점이 위대하다는 거고. 위정자들은 말이야. 언제나 자기들이 역사의 중심에서 역사를 움직인다고 믿고 있거든. 그런데 마르크스가 그걸 뒤집어엎은 거지. 그것도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말이야."

"그래도 제도로서의 맑시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아직은 실패했다고 볼 수 없어. 왜냐하면 맑시즘의 근간이 되는 노동자 농민이 사회를 주도해가고 있거든."
"그럼 형님은 우리나라도 그런 제도를 수용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까?"
"군사독재정권이 유지되는 한… 부인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요?" 근회가 놀란 듯이 눈을 껌뻑거렸다. 나는 맑시즘을 신봉하는 것 같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주장은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인 것이다. 나는 남자의 확고부동한 가치관과 역사관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계속해서 맑시즘과 변증법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맑시즘은 말이야. 처음에는 아주 좋은 이념이고 토대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어. 그러던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에 접목되면서 왜곡되기 시작한 거지."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고, 근회는 기회만 있으면 끼어들 태세였다. 나는 술을 찔끔찔끔 들이키며 그들의 논쟁을 경청했다. 남자의 말처럼 초기 맑시즘은 프랑스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제법 바르게 성장해 갔다. 그러나 헤겔 철학의 사변적, 관념론적 측면을 현실적 인간의 입장으로 전개해 실천적,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정리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마르크스는 그리스도교적인 보편주의와 프로이센국가의 환상적 공공성을 인간의 유적(類的) 본질의 소외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의 공동성 회복을 위해서는 사적 이해대립을 가져오는 사적 소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역사 발전의 주체를 현실적 개개인으로 간주하고, 인간 생존의 제1조건인 생산에 착안해 사상을 전개시켜 나갈 것을 주창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생산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교통방법에 초점을 맞춘 역사관, 사회관인 사적 유물론을 성립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이론은 곧이어 문제점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잉여가치 착취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계급투쟁은,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즉시 공산주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과도기에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사회에서 갓 태어난 공산주의의 제1단계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의 흔적이 남는다는 결점이 있었다. 레닌은 이 제1단계를 사회주의단계라고 했지만, 러시아혁명 이후 생겨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구상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발전단계 중 어느 단계에 있는지 논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