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죽고싶어"... 지서 안에서 소란이
"너 죽고싶어"... 지서 안에서 소란이
  • 승인 200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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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해무-17회
 “일이 그렇게 됐어요.” “그럼 시간이 나는 대로… 관사에 들렀다 가지 않겠어?” “들를 시간이 없을 거예요.”
“왜?” “미안해요.” “사실 나… 유키코와 결혼했거든.” 내 말에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전혀 상상치 못한 일이라는 듯이. 내가 다시 말을 꺼내려 하지 그녀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됐군요. 축하드려요. 언니에게도 안부 전해 주고요.” “정말 들렀다 가지 않을 거야?” “죄송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럴까.”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무언가 말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녀를 이대로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머리가 띵하고 혼란스러울 뿐. 내가 무거운 표정을 한 채 우물거리고 있자 그녀가 다시 한번 강조하듯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 그… 그래.”
나는 이렇게밖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갑자기 나타난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목숨을 구해준 여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어둠 속으로 정소희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생각보다는 맑고 투명한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니, 다방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느낄 수 없는 어떤 고결한 기품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고통스런 삶이 나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그녀가 정중히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나는 쓸쓸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우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소희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나 운명이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너 죽고 싶어?”
그때 커다란 고함소리가 지서 쪽에서 들려왔다. 나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지서 안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지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평소 앞뒷집에 살며 담장의 경계를 놓고 다퉈왔던 어촌계장 마삼육과 전직 파출소장 이경천이 욕지거리를 해대며 싸우고 있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경찰 출신의 이경천이었다. 그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마삼육을 향해 ‘어촌계장이 무슨 벼슬이라고 지서장 부임 행사에 나타났느냐.’ 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마삼육도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대들었다. 전직 파출소장이면 지서장 부임날 와서 횡설수설해도 되느냐고. 물론 마삼육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경천은, 자신이 우리들 선배라며 틈만 있으면 지서로 올라와서 아는 척을 했다. 그러니 마을의 중대사인 지서장 부임 날 초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이경천은 마삼육을 향해 맥주병을 집어던졌고, 맥주병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러나 마삼육이 지고만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그도 이경천에 뒤질세라 같이 맥주병을 집어던졌다. 지서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마삼육과 이경천은 서로 욕지거리를 해대며 맞붙었고, 올라와 있던 유지들은 허겁지겁 자리를 떴다. 그러나 더 가관인 것은 새마을 지도자와 이장이었다. 그들은 마삼육과 이경천이 술병을 깨며 싸우자, 이때다 싶어 엉겨붙어서 치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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