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5일장 순례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같은 반달이 싸리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와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노천명 ‘장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점점 잃어버리고 사는 게 많아진다.
 그 중 하나가 재래시장이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에 밀려 더 이상 설 곳을 잃어버렸지만 재래시장만큼 삶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곳 또한 없다.
 특히 날마다 장이 서는 상설시장과 달리, 5일에 한번씩 공터를 잡아 열리는 5일장은 여러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축제마당이었다.
 장이서는 곳이면 따라다니던 사당패와 곡마단은 세월과 함께 자취를 감췄지만, 여전히 엿장수들이 울리는 풍악이 장 분위기를 돋운다.
 “뻥이요” 목청 터져라 뻥튀기 장수가 외치면, ‘뻥’ 소리 요란하게 하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끈한 튀밥이 바구니 한가득 담겨진다. 지금은 ‘삐익’ 호각 소리가 뻥튀기 장수의 쉰 목을 대신한다.
 대형할인점에서야 바코드 하나로 모든 값이 정해지지만, 시장에서는 흥정 없는 장사가 없다.
 “깎아줘”, “않돼”, “그러지 말고 더 줘”, “밑지고는 못팔지” 한 바탕 입심대결이 끝나면 한 웅큼 봄나물이 더 들어가고, 파는 이는 파는이 대로, 사는 이는 사는 이 대로 입가에 미소가 하나 가득이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나선 아이들의 눈에 신기한 것만 들어오니 갈길 바쁜 엄마의 발걸음이 늦춰지면, 즉석에서 굽는 못생긴 꽈배기가 엄마를 대신해 아이들을 다독거린다.
 장돌을 쪼개고, 쇠뚜껑을 산산조각 내며 요란하게 약을 팔던 약장수들은 없지만 시장 한켠에서는 ‘거시기’에 좋다며 약재를 파는 꾼들의 유혹도 5일장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5일장은 성남에서 열리는 ‘모란장’이다.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대원천 하천을 복개해 마련한 장터에는 끝자리가 4나 9인 날 마다 1천500여명의 상인들이 모여든다.
 화훼부에서부터 잡곡, 약초, 의류, 신발, 잡화, 생선, 야채, 애견, 고추, 가금부 등 물건 종류별로 13개 구역으로 나눠 구경하기 편리하다. 먹거리 장터에는 꼼장어며 파전, 장터국수, 만두 등 온갖 장터음식을 한데 모아놓았다.
 모란장 주변에 늘어선 건강원과 개고기집들도 유명세를 더한다.
 용인시청 옆 경안천 1㎞ 구간에서 열리는 용인장도 유명하다. 용인장은 모란장 다음날 선다. 400여명의 상인들이 냇물을 따라 길게 늘어서 판을 펼쳐놓는다.
 지금은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인 안성장도 대표적인 5일장이었다. 조선시대만해도 대구장, 전주장과 함께 3대장으로 불릴 만큼 규모가 크고 물건이 다양했다. 이 곳에서는 안성맞춤 유기와 안성도포뿐 아니라 갖가지 지역특산물을 선보여 볼거리가 많았다. 안성터미널 주변에서 열린다.
 인천에서는 강화도에서 열리는 4곳의 5일장이 있다. 강화터미널 앞 2동의 강화 풍물시장 사이에 천막을 치고 열리는 강화장을 비롯해, 길상시장, 상방시장, 내가시장 등이 있다.
 규모라 해봐야 70명 남짓 상인들이 모이는 강화장이 강화 5일장 중에서는 가장 크다. 끝자리가 2나 7인 날짜에 열린다.
 봄나물이며, 메주, 말린 고추, 생선, 야채, 잡화, 약초, 농기구, 나무, 화초 등을 살 수 있다. 번듯하게 자리잡은 풍물시장에 가려 초라해 보이긴 해도 ‘장’ 맛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길상시장(4, 9가 들어간 날)은 길상면 온수리에서, 상방시장(1, 6)은 화도면 상방리에서, 내가시장(5, 10)은 내가면 고천리에서 열린다. 하지만 그 규모가 적다.
 강화 5일장의 또다른 좋은 점은 장만 보고 끝나지 않는데 있다. 일단 ‘강화장’의 경우, 바로 옆에 풍물시장이 붙어 있어 순무로 담근 김치며 된장 등 각종 장이니 밑반찬 거리, 봄나물, 야채 등 5일장에선 부족한 것을 살 수 있다.
 강화 특산품 판매장도 강화장 바로 옆에 붙어 있고, 터미널 주변에는 강화 특산물인 인삼을 파는 곳도 지천이다.
 없는 것 없이 파는 대형할인점에서 살 수 없는 유일한 것은 ‘민속장’에만 있는 ‘사람 사는 맛’이다. /김주희기자 blog.itimes.co.kr/kim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