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를 계속 지켜보던 박남철 전사가 다시 리상혁 전사의 귀를 끌어당겼다.

 『두 사람이 올라오고 있는데 한 사람은 려자다. 도야지 주인이 아닐까?』

 『기럴지도 모르지. 조금만 더 지켜보자우.』

 리상혁 전사가 박남철 전사와 김만호 전사를 안심시키며 가슴을 폈다 오므렸다 했다. 말은 안 해도 사실 그도 입술이 타는 순간이었다. 올라오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돼지를 잃어버린 주인집 노깔(할머니) 같으면 그냥 달아나야지, 따라오지 못하게 때려 몸을 골병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몸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돼지를 업어 왔으니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도 노깔은 피가 마를 것이다. 그런 사람을 내가 살겠다고 주먹패들의 의리도 잊은 채 치명상을 입히면 후일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파 돼지 서리는 했을 망정 순박하고 착한 농장원들을 더 이상 울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산을 올라오고 있는 사람을 한번 더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산을 올라오고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그들이 숨어 있는 바위에서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키들키들 웃으며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세 사람은 너무도 어이가 없는 듯 사로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못하고 있었다.

 『아휴! 깔바이 보러(연애하러) 올라온 저 농끼(촌놈) 새끼한테 우리가 속앗서. 남철아, 어카면 좋으네?』

 리상혁 전사가 맥빠진 표정으로 박남철 전사를 바라봤다. 박남철 전사는 깔바이 보러 올라온 농끼가 아닐지도 모른다며 좀더 지켜보자고 했다. 김만호 전사도 박남철 전사의 판단이 맞을 지도 모르니까 좀더 지켜보자 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리상혁 전사가 도리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길타면 나도 찬성이야.』

 세 사람은 숨을 죽이고 아래를 지켜보았다. 풀벌레 울음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듯한 농촌의 밋밋한 야산 비탈에 앉아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키들키들 웃으며 정담을 나누고 있던 남녀는 소쩍 소쩍 소솥쩍 하고 울어대는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밤하늘을 울려대던 소쩍새 울음소리가 잠시 뜸해지자 여자가 야산 비탈에 반드시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를 흔들었다.

 『영기 오빠! 영기오빠!』

 『으흥?』

 『일어나 봐.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게.』

 『무슨 이야기?』

 『소쩍새 이야기. 들어보앗서?』

 『아니. 해 봐.』

 여자가 남자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이모한테 들었는데, 옛날 어느 마을에 딸을 많이 둔 남자가 살고 있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