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12) 인구는 리상위의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쪽지와 주먹밥 보따리를 내놓으면서 다그칠 때는 사단 보위부 수사일꾼들이 복순 동무와 영실 동무까지 잡아들여 자백을 받아 낸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제사 사단 보위부 일꾼들이 복순 동무를 잡으러 갔다는 소리는 또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사단보위부 수사일꾼들은 아직까지 영실 동무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인구는 나름대로 그렇게 상황을 진단해 보면서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았다.

 리상위는 지레 짐작으로 넘겨짚고 있을 뿐 그날 내가 사관장과 같이 월암리에 갔다온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해. 나중에는 다 드러나는 한이 있어도 지금 서둘러서 복순 동무와의 관계까지 자백할 필요는 없어. 위생지도원의 말처럼 확실한 것만 대답하고 미심쩍은 것은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리상위의 말을 더 들어볼 필요가 있어….

 인구는 속으로 그런 결심을 하면서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자기 성깔에 지친 리상위가 또 소리를 질렀다.

 『빨리 대답하라. 그날 양곡 수령하러 가서 술 먹었지? 술 먹지 않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가? 그날, 부대를 출발해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까지 동무와 사관장이 한 일들을 5분 단위로 자술하라. 복순이란 에미나이는 어디서 만났는가? 바른 대로 말하라. 동무 얼굴에 다 적혀 있는데 왜 입 다물고 있는가? 그러면 어떤 책벌이 동무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가? 공개총살 돼.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반동 새끼 공개총살형 기억하지? 빨리 좋은 말 할 때 불어. 그날, 술 먹었지? 술 먹고 그 에미나이하고 연애질 했지? 내 말이 틀렸다면 량곡 수령하러가서 차 몰고 다닌 곳을 말해 보라. 거기엔 분명히 동무의 얼굴을 기억하는 증인들이 있을 것이고, 그 증인들이 동무의 결백을 입증해 주면 풀려날 수 있어. 빨리 실토하라.』

 리상위의 악다구니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칠어졌다. 인구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그만 흑흑 흐느꼈다. 이제 자신의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과 함께 자꾸 두려움만 밀려왔던 것이다. 게다가 공개 총살형이란 말만 생각하면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그럴 때마다 속에서 무엇이 울컥 올라올 것처럼 매스껍기도 했다. 매스꺼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밀려오는 공포감과 구토 증세를 못 이겨 인구는 마침내 아아 하고 소리치며 발작하다 책상에 엎드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머리통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지고 머리카락이 가시처럼 곤두서서 두피(頭皮)를 찔러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구의 그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리상위가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드는 듯 인구 곁으로 다가가 흔들었다.

 『이봐, 곽인구. 너 갑자기 와 기래?』

 리상위가 톡톡 뺨을 치며 되물어도 인구는 책상에 엎드려 왝왝 토악질만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