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7) 마른버짐이 피어 있던 검고 꺼칠꺼칠한 피부는 매끄러워졌고, 유난히 불거지던 턱뼈와 광대뼈도 묻힌 느낌이었다. 리상위는 좀 강압적으로 신문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들고 있던 원주필을 인구의 면전에다 갖다 대었다.

 『이게 뭐야?』

 리상위의 차가운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인구는 리상위의 눈동자와 원주필을 번갈아 가며 지켜보다 낮게 대답했다.

 『원주필입네다.』

 이새끼 이거, 정신은 멀쩡한 새끼가 괜히 다친 척하는 거 아냐?

 리상위는 인구의 면상을 몇 대 쥐어박아 혼쭐을 낸 뒤 신문을 시작할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큰 소리로 대답하라!』하고 엄포를 놓은 뒤 다시 물었다.

 『이거, 몇 개인가?』

 인구는 금시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진땀이 치솟았다. 그는 리상위의 눈동자를 지켜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독기가 잔뜩 배인 리상위의 얼굴이 세 개로 보였다. 똑 같은 사람의 얼굴이 세 개로 보일 리가 없다 싶어 눈에다 힘을 주어 똑바로 쳐다보면 바늘로 미간을 찔러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와 오래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뒤, 두 손으로 눈꺼풀을 잠시 누르고 있었다.

 『빨리 대답하라!』

 인구는 다시 고개를 들고 원주필을 바라보다 위생병의 말을 떠올렸다.

 군의관 동지가 인구 동무의 딱한 처지를 좀 봐주려고 하는 눈치니까 누가 물으면 아픈 척하구 헷갈리게 대답하시라요. 그래야 우리 군의 동지가 높은 사람들한테 욕은 얻어먹지 않을 것 아니겠소?

 하루라도 군의소에 더 누워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는 충고였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일 것이라는 판단이 섰지만 눈앞에 보이는 대로 세 개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리상위의 눈꼬리가 갑자기 치켜 올라갔다.

 이 쳐죽일 새끼! 이거 진짜로 병신 짓 하는 거 아냐?

 리상위는 치받는 성깔을 참지 못해 어금니를 깨물고 상체를 떨어대다 다시 물었다.

 『무슨 색깔인가?』

 『희끄무레한 색입네다.』

 『흰색이면 흰색, 회색이면 회색이지 희끄무레한 색이 어딧는가? 다시 대답해 보라.』

 『회색입네다.』

 리상위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정으로 인구의 눈동자를 쏘아봤다.

 아이구, 이 쫑간나 새끼, 쥐어박을 수도 없구서리….

 리상위는 들고 있던 흰색 원주필을 내려놓으며 앞에 앉아 있는 보위서기에게 눈짓을 보냈다. 인구가 써 낸 자술서를 들고 오라는 것이었다. 보위서기가 수사문건함에서 서류철을 꺼내 왔다. 리상위는 서류철 속에서 인구가 작성한 자술서 두 통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