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덕의 ‘동승’(일명 ‘도념’)이란 작품을 65년만에 스크린을 통해 접할 수 있게 된 건 커다란 행운이다.
 1915년 경기도 인천부 화평리 455번지에서 태어나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교)를 다닌 함세덕은 월미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용동 237번지의 ‘애관극장’에서 연극을 보며 예술적 감수성을 키웠다.
 인천상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의 ‘일한서방’이란 서점에 취직하고 여기서 유치진(극작가)을 만나 본격적 극작수업의 길을 걷게 된다.
 함세덕은 첫 작품 희곡 ‘산허구리’를 ‘조선문학’에 처음 발표했다. 이어 1939년 3월 동아일보사 주최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서 희곡 ‘도념’을 선보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1940년 1월 희곡 ‘해연’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극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함세덕은 35세로 요절하기까지 불과 10여년간 일제 말 암흑기에서 해방 후 혼란기, 월북 등 불행한 민족사를 거치면서 20여편의 희곡을 만들었지만, 분단 이후 40여년의 세월동안 남·북 문학사에서 동시에 안개처럼 뭍혀져야 했다. 
 우리나라에선 1988년 ‘월북작가 해금조치’에 따라 연구가 시작됐다. 지금은 인천지역 소장 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중이다.<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