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명 존 린턴(John Linton)을 한국명 인요한으로 절묘하게 잘 지었다. 한국에 귀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우리에겐 한국말 잘하는 미국 출신 세브란스병원 의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가문을 살펴보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저절로 갖게 된다.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은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평생을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에 헌신했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줬으며, 3·1운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사에도 적잖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한국 사랑은 아들, 손자까지 이어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벼랑 끝으로 몰렸을 때 느닷없이 혁신위원회를 꾸리겠다고 하더니 인요한 교수를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그때만 해도 소나기 올 때 우산 쓰는 정도로 생각했다. 게다가 정치를 잘 모르는 인 위원장을 영입한 것도 그의 명성에 기대 구색만이라도 맞춰서 시간을 벌겠다는 것쯤으로 봤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그가 만나는 사람도, 내놓는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난 것도,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나지 못한 것도 모두 큰 이슈가 됐다. 김종인 박사도 만났으며, 8일에는 대구로 가서 홍준표 시장도 만났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가도 중요하지만 만남 그 자체가 화제가 될 정도로 사실상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인요한 효과다. 당 대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 위원장의 행보 못지않게 쏟아내는 발언도 만만치 않다. 먼저 김기현 대표를 비롯해 윤핵관들을 향해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요구하며 당에 대한 헌신을 강조했다.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갑자기 그의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불쾌하겠지만 그냥 뭉개고 갈 수는 없어 보인다. 국민 눈높이와 당 혁신에 대한 진정성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다음 수순은 영남권 중진 10여명이 될 것이다. 공천이 곧 당선과 다름없는 지역에서의 다선은 자랑이 아니라 수치라는 것이 인 위원장 판단이다. 그렇다면 그들 또한 거취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버틴다고 해서 공천의 칼날까지 피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인요한 위원장이 말과 행동으로 동분서주하며 이슈 몰이를 하는 이때, 민주당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인요한 효과이다. 강서구청장 보선 압승에 취해버린 것일까. 정책도, 인물도, 이슈도 없이 또 탄핵 얘기만 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200석도 기대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쯤이면 취한 것이 아니라 다시 병이 도진 것이다. 총선 5개월 전이다. 국민의힘 보다 몇 배 더 가혹한 쇄신 없이는 진짜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요한 효과,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이 더 긴장해야 하는 이유라 하겠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