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조선 망국까지의 과정은 무책임한 엘리트 정치의 산물이었다. 조선의 근왕파, 위정척사파, 급진개화파, 온건개화파는 국익을 위해 단결하지 않았다. 그들은 합심해 메이지유신을 추진했던 일본의 엘리트들처럼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뭉치지 않았고,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데 바빴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대변하는 두 거대 양당의 정쟁은 구한말의 정치와 놀랍도록 닮았다. 자기 당파만을 애국이라고 여기니 국익을 위한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 고종·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사이에 벌어진 권력 다툼과 관료들의 부패가 5년짜리 대통령제와 입법권력을 둘러싼 양당의 싸움과 정치 엘리트들의 부패로 양상이 변했을 뿐이다.
잠재성장률은 1%대까지 떨어져 있으며, 입시교육 시장의 비대한 성장과 학부모 갑질로 교권이 추락하고, 민생은 극도로 어려워지는 등 각 분야의 경고음이 심각하다. 양극화와 불평등 완화,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규제 철폐, 교육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결과 성장동력이 사라졌다. '한강의 기적'과 '깨어보니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에 놓여 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4차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기술혁신이 일어나도록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구조개혁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혁신성장을 추구해야만 성장 잠재력을 올릴 수 있다.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고,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청년이 과감하게 벤처 기업에 투신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치가 변해야 한다. 적대와 증오의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1726)는 18세기 영국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소설의 3부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를 보면, 이 나라에는 두 당파가 싸우고 있었는데, 정치학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 정당의 국회의원 100명을 골라내서 이들의 뇌를 톱으로 반씩 자른 다음에 반대편 정당의 사람들 뇌에 붙인다는 방안을 내놓는다. 그러면 그들의 두개골 안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얼마 안 가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당파 싸움은 의회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영국조차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우리로서는 지금의 정치 현실에 마냥 좌절할 이유는 없다.
그동안 국민이 정치권에 원했던 것은 대화와 타협, 통합과 상생을 통한 정치개혁이었다. 그러나 몸은 2023년을 살고 있으면서도 의식은 1980년대의 세상에 머물러 있는 정치인들은 결국 국민의 절실한 소망을 외면했다. “무릇 군자는 배요,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동양고전의 명언은 민심의 힘을 시사한다. 민심으로 판이 크게 뒤집힐 갑진년 봄에는 <걸리버 여행기>같은 기괴한 작품을 그만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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