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해 질 녘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이 시간은 황혼이 깔리면서 모든 사물이 검붉고 검푸르게 물들어 물체의 실루엣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동물이 나를 반기러 오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우리 시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닮았다. 혼돈과 분열에 빠진 한국 정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한국 사회가 공공의 적을 방치해 왔기 때문이다.
패거리 정치와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인, 권력을 사유화하는 공직자, 법과 정의를 농단하는 법조인 등이 공공의 적이다.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인, 권력에 빌붙어 출세 궁리만 하는 지식인, 잇속만 챙기는 기업인, 혈세를 착복하는 시민운동단체 역시 공공의 적이다. 민주화 이후 이들의 연고주의와 끈끈한 동맹으로 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유예되고 있다. 이는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3 레가툼 번영 지수'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사회적 자본 지수가 167개국 가운데 107위로 개인·사회 신뢰가 매우 낮다고 밝혔다. 공적 기관에 대한 신뢰 지수를 보면, 사법 시스템 155위, 군 132위, 정치인 114위, 정부 111위 등 대부분 하위권이다. 이 중 사법 시스템은 2013년 146위에서 2023년 155위로 아홉 계단이나 하락했다.
법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민주화 이후 최악이다. 박근혜 정부 때 사법농단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1심 구형까지 4년7개월이나 걸렸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검찰 기소에서 1심 구형까지 3년8개월이 걸렸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는 법원 내 코드 인사와 편 가르기, 재판의 편향성과 공정성 시비, 재판 지연 등으로 사법부를 행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켰다.
민주 국가에서 사법부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 재판의 불편 부당성은 중요하다. 판사들이 법조문을 올바로 해석하고 공정하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법치는 허울에 불과하다. 정권에 따라 사법부의 입장이 영향을 받는다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제도의 기본을 파괴하고 만다.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한 취급을 받는다면, 이는 결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다.
법치가 철저히 적용되어야 할 대상은 국가 기관과 정치인이다. 법률이 국민에 대해서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면서, 국가 기관과 정치인에 대해 무력하다면 법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총선에서 180석의 압승을 하면서도, 대선에 실패한 원인은 검찰개혁을 외치면서 실상은 법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을 엄벌하는 법치국가를 확립하라고 국민은 정치 경험이 없는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을 선택했다. 다시는 국민의 진심과 열망이 배반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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