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벤치에 놓인 소주병
눈 내린 벤치에 놓인 빈 소주병과 뚜껑

 지난 2월 1일 아침 눈 내린 송도 문화공원의 벤치에 있던 빈 소주병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날은 설날의 어스름한 새벽이었습니다. 아파트에서 창밖을 보니 눈이 하얗게 내렸습니다. 거리의 가로등은 아직 불을 밝히고 있었지요. 흔히 이런 날에 내린 눈을 서설이라고들 합니다. 올 한 해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라고 여기지요. 그 눈을 잠시 만나려고, 공원으로 잠깐 내려갔습니다.

 발자국은 눈 위에 도장을 찍듯이 뚜렷하게 났고, 눈은 쌀떡처럼 뭉쳐졌습니다. 눈은 보행로와 잔디밭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고르게 내렸습니다. 그 눈은 어린이 놀이터 그네에도, 미끄럼틀에도 공평하게 내린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눈은 공원 주차장에 불법으로 장기 주차한 하얀색 캠핑카에도 공평하게 내려서, 그 차를 탐욕스런 백설기처럼 눈에 띄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그 차를 아마도 그렇게 볼 겁니다. 그 공정한 눈이 어제 밤부터 내렸는지 눈웃음 짓고 있는 눈사람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침 찬바람이 발길을 막습니다. 돌아가다가 사진 속의 눈 내린 벤치에 놓여 있던 빈 소주병을 보았습니다. 소주병의 왼쪽에는 지난 밤 찬바람에 날리던 눈이 붙어서 얼어 있었습니다. 병 뚜껑은 그 옆에 놓여 있었고, 소주병은 비어 있었습니다.

 매서운 눈바람 불던 어제 밤 누가 저 벤치에서 소주를 마시고 갔을까? 여럿이 모여 마신 술자리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설 명절의 전날 밤에 어떤 이가 저 벤치에서 혼자 소주 한 병을 비웠을까요!  눈이 바람막이 겉옷처럼 얼어붙은 술병에 남모를 사연이 서려 있겠지요.  눈은 공정하게 내려도, 빈 소주병은 저렇게 쓸쓸해 보입니다. 

/ 김원경 시민기자 twokal0212@naver.com